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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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는 사람은 아닌데 올해는 한 달에 시집 한 권씩 읽어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었다. 올해가 가기도 전이지만 결과는 이미 예전에 대실패. 한 달에 한 권이 아닌 한 달에 한 편으로 적당히(?) 나 자신과 협상을 봤지만 한 달에 시 한편 챙기는 일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나에게 시는 어렵고 먼 존재다. 1월이 다 가기도 전에 올해의 계획을 실패하긴 했지만 새 옷을 입은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자마자 올해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시집이 개정판을 내며 최근 발표한 시들을 추가해 몸집을 키워가는 모습이 문학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라서 2021년 개정증보판으로 만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독자로서도 의미를 크게 부여하게 된다. 거기에 흔히 봐왔던 시집들과는 달리 소설이나 에세이집에 더 어울려 보이는 판형과 두께(가름끈이 있는 시집이라니!)는 충분히 압도적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시집을 한 권 읽어야 한다는 부담에 시집으로 서평을 쓰는 일도 처음이라 부담의 연속이지만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시인의 말에 밑도 끝도 없이 밀려오던 부담감은 애정과 책임감으로 변해있다. 시인의 말부터 이미 예술이니 역시 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가족과 일상, 자연과 현대사의 흐름을 시를 통해 엿보게 되고 과거에 만났던 시를 다시 만나며 그때의 나를 추억하게 된다. 「수선화에게」를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던 대학생 시절 나는 외로웠고 많이 울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우연히  「밥값」을 읽다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졌던 일도 있었다. 오랜 시간 시와는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틀렸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아진다.


책장에 가지런히 꽃아 두는 것보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자주 넘겨보는 책들이 종종 있다. 나의 경우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짧은 호흡의 에세이나 총천연색 꿈을 꾸게 할 것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의 책들이 주로 침대 머리맡 자리를 차지하곤 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역시 책장보다는 침대 머리맡 ZONE에 더 어울리는 책이라 아직까지 책장 자리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 시집이 어려워서 오래 끄는 것이 아닌 자주 챙겨 읽기 위해 오래 붙들고 있는 경우는 처음이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이번 개정증보판이 최종 버전이 아니길, 언젠가 지금의 나를 추억하며 다른 표지의 더 두꺼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읽는 날이 오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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