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환상적인 이야기에 대책 없이 빠지게 만드는데 독보적인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 『열대』가 출간됐다. 모리미 도미히코라는 이름이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어 신뢰감을 주는데 제6회 고교생 나오키상 수상작, 일본 서점 대상 TOP4, 데뷔 15주년 기념작 등 작품을 향한 무수한 수식어들이 작품에 대한 기대심을 한층 높여준다. 『열대』라는 제목도, 제목과 어울리면서도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유난히 난해한 표지 디자인까지 모든 요소들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동시에 키워준다. 


 꼭 저주 같잖아요.

 신조 군이 한 말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자신도 같은 저주에 걸리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단언하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두 개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열대』라는 이야기와 『열대』를 둘러싼 이야기. 이 안과 밖의 두 이야기 사이에는 어떤 불가사의한 통로가 있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p.102


학창시절 우연히 헌책방에서 『열대』를 발견하고 흥미롭게 읽어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열대』는 사라지고 『열대』라는 책에 대한 정보도, 사야마 쇼이치라는 작가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 『열대』에 대한 기억도 잊고 살아가던 주인공은 소설가가 되지만 그에게 슬럼프의 시기가 오면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열대』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마침 우연히 참여하게 된 침묵 독서회에서 그는 다시 『열대』를 마주하게 되고 드디어 『열대』에 대해 아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소설의 존재를 알고 읽은 독자들도 소수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도 없는 사야마 쇼이치의 소설 『열대』.『열대』의 수수께끼를 이야기하는 학파가 조직되고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문학 독자들이라면 설렐 수밖에 없는 소재로 읽기도 전에 반하게 만드는 마력의 소설이다. 누구도 끝까지 읽은 적 없는 수수께끼 같은 소설과 소설의 끝을 위해 결성된 학파 사람들,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벌어지는 액자식 구조의 이야기가 엄청난 흡인력으로 읽힌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독특한 구조의 이야기를 모리미 도미히코는 촘촘하고 밀도 있게 펼쳐낸다. 묘하게 끌리는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야마 쇼이치의 『열대』는 아껴서 읽고 싶은 책이라면 모리미 도미히코의 『열대』는 단숨에 읽어가게 만드는 책이다. 또한 수수께끼가 쉽게 풀리면 낭만이 없다는 걸 사야마 쇼이치도, 모리미 도미히코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제각각 『열대』를 만납니다." 나카쓰가와 씨는 말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겨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이윽고 이야기는 각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마치 사막을 흐르는 강이 가지를 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그 물줄기들은 어디로 이어질까요. 마술적 정신으로 생각하면 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어째서 우리는 『열대』의 결말을 모를까요. 어째서 『열대』는 사라졌을까요? p.134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펭귄 하이웨이』 등 지금까지 모리미 도미히코의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열대』만큼은 애니메이션화보다는 실사화가 더 어울려 보이는 이야기인 것 같아 원작 소설 영화화도 기대하게 된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며칠 밤 동안 뒷날 출근 걱정은 뒤로하고 『열대』를 단숨에 읽어갔다. 몇 년 전 『야행』도 딱 이맘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열대야에 모리미 도미히코 만한 작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1월엔 박완서, 여름엔 프란츠 카프카와 엘레나 프란테의 나폴리 4부작, 가을엔 아멜리 노통브, 크리스마스에서 연말까지는 해리포터 시리즈 등 어느 계절이나 기간이 되면 챙겨읽는 작가, 작품들이 있는데 열대야엔 모리미 도미히코가 추가됐다.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이만한 작가가 없지.


*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