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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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곤 어쩌다 한번씩, 잠깐 만나는 조카들이 전부였던 인생이었는데 올초부터 업무의 변화와 함께 어린이 친구들이 일상에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소영 작가처럼 현재 나의 세계 역시 어린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무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어린이를 위하는 마음도 언제나 특별한데 어느덧 내 마음속엔 어린이들을 향한 고민도 늘어났다. 아니 비상상황에 직면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상반기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특화된 업무가 어린이 친구들에게 쉼없이 주의를 주고 혼내는 것으로 바꼈다는 것인데 분명 이건 심각한 일이다.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p.32


출간과 동시에 반응이 뜨거웠던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이제서야 읽어보게 됐다. 문학에 대한 관심과 현재 업무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보면 진작 읽었어야 하는 책인데 개인적으로 지각 독서를 했다. 그만큼 책에 대한 기대도 높을수밖에 없었는데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작가가 내내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너무 내 책이었다. 어떤 챕터에선 너무나 적나라한 내 상황에 대한 이야기에 괜히 찔리기도 했는데 책의 존재를 진작 알고 있었음에도 왜 독서를 미뤄왔던 걸까, 더 빨리 읽었더라면 그만큼 더 빨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과 반성이 쉼없이 밀려왔다.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p.91


『어린이라는 세계』는 출판계에 일으키고 있는 뜨거운 반응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을 넘어 뜨겁게 해주는 책이다. 독서 초반 마음을 울리는 구절, 다시금 나의 상황을 점검하고 돌아보게 되는 구절 등에 부지런히 인덱스 테이프를 붙이다가 몇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붙어있는 인덱스 테이프를 보며 인덱스 테이프가 소용없는 책이라고 빠르게 인정하고 인덱스 테이프 붙이기를 그만뒀다. 작가의 모든 시선과 통찰이 중요하고 귀하다. 그러니까 『어린이라는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하고 귀한것들로 가득하다. 방심하고 있다가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의 나를 만나기도 하고 너무 모르고 살았던 어린이라는 세계를 조우하기도 한다. 나는 원래 새해에도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아닌데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난 후 어린이 친구들을 대하고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고 싶고 어린이들의 품위를 지켜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몇가지 바람을 가지고 다짐을 하며 마음을 다시 잡아보는 계기를 가지게 됐다.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社訓이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 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랑'이란 내가 다루기에 너무 크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마음이 드러날지도 모르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p.151


『어린이라는 세계』를 보며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되고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된다. 사라진 줄 알았던 나였던 그 아이를 내 속에서 다시 발견하여 반갑기도 하고 너무 어른이 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고 하루라도 빨리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나저나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을때도 그랬는데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의 세계』까지 읽고나니 어린이 글쓰기, 독서교실에 대한 로망이 왜이렇게나 크게 생기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럴 능력이 1도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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