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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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짜께,

 우선 이 말부터 할께요. 내가 글짜를 틀리개 쓰더라도 이해하새요. 난 여우라서 그래요! 그러니 쓰기도 글짜도 완벽카진 않쵸. 하지만 내가 쓰기와 글짜를 이망큼이라도 배우개 댄 사연을 알려줄께요! p.5


맨부커상 수상 작가의 작품 답지 않아 보이는(?) 작은 판형과 디자인, 완벽하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하는 여우의 시점으로 맞춤법이 엉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조지 손더스의 『여우 8』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무척이나 많은 소설이다. 전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맨부커상 수상 작가라면, 그 작가의 작품이라면 기대하게 되는 요소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품게 한 건 여우를 주인공으로 한 슬프고 사랑스러운 우화라는 소개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올해 초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읽으며 노든과 윔보, 치쿠,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 보여준 아름다운 사랑과 연대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인데 문학동네에서 이번엔 인간의 말을 배운 여우에 관한 이야기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고 하니 작품을 읽기도 전에 작품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조앗던 몃 가지.

 어떤 잉간들이 내가 자이내 말을 갱장히 잘하는 걸 듯고 내게 닥고기를 좀 줘요. 나는 그들과 식탁에 함깨 안쬬. 그러면 그들이 말해요. 여우로 사는 건 어때?

 나는 말하죠. 좃치.

 그들이 말해요. 여우는 우리가 가장 조아하는 동물이야.

 난 말하죠. 고마워. 

 그들이 말해요. 세상에. 왜 우린 멍청하게 가장 마니 키우는 반려동물로 개를 골랏을까?

 난 말하죠. 나도 도무지 모르겟어. p.21-22


사람들을 홀리는 동물로 유명한 여우지만 『여우 8』의 여우 8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우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인간이 사는 집 창가 너머에서 들려오는 낱말을 통해 인간의 말을 배우고 창의적인 공상가의 기질이 있는 여우 8은 여우 무리 속에서도 엉뚱한 존재로 통한다. 대형 쇼핑몰 건설로 인간에게 숲을 빼앗기고 그것으로 모자라 같은 무리들의 여우들도 잃어버린 여우 8이 인간들에게 쓴 편지는 엉뚱함으로 시작해서 너무 슬프게 끝난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방식인 50여 페이지의 짧은 소설을 통해 조지 손더스는 환경 파괴와 자연, 생명에 대한 강렬한 경고를 날리는데 여우 8의 편지를 끝까지 읽고 답장을 써야 하는 숙제를 넘겨받은 잉간(오타아님)은 무거워진 마음에 쉽게 손이 가지 못하고 있다. 단숨에 읽어갔지만 감정의 파고가 커서 감정을 주체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당신들의 얘기가 행복카게 끈나기를 원한다면,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 p.54


조지 손더스가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써내려간 우화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독자를 제대로 홀렸다. 그리고 짧은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여우 8은 독자들을 제대로 길들인다. 최고의 소설이었고 최고의 소설이었다. 많은 인간들이 여우 8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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