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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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물건을 모으는 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새 이런저런 물건이 '모이는' 것이 내 인생의 모티브 같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무라카미 T』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모았던 티셔츠 수백 장과 그에 관한 에세이 열여덟 편을 모은 작품이다. 티셔츠로 한 권의 에세이를 완성하고 엄청난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작가는 전 세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위스키 회사에서 만든 티셔츠들, 세계 각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신간 홍보를 위해 만든 티셔츠 굿즈들, 자동차 그림 티셔츠 등 수많은 티셔츠 컬렉션과 에세이 속에서 만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과 그의 취향을 엿보는 재미가 기대 이상으로 쏠쏠하다. 


 나도 물론 무지 티셔츠를 좋아하고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입긴 하지만, 그다음으로 자주 입는 것은 이런유의 레터링만 있는 티셔츠다. 그것도 의미 있는 문맥을 가진 문장이 아니라 "이건 대체 무슨 뜻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법한, 투박하게 글씨만 인쇄된 것이 좋다. 그림 있는 티셔츠처럼 질리는 일도 없고 메시지성도 적고 자태가 깔끔하다. 다른 옷과 맞춰 입기도 쉽다. 그러서 그런 티셔츠를 발견하면 바로 사버린다. p.64 「의미불명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속에는 장난기 넘치거나 어딘가 미숙한 어린 소년과 세상사에 통달한 어른이 공존하는 것 같다. 그의 소설을 통해, 에세이를 통해 진작부터 느껴왔었지만 『무라카미 T』는 예상과 짐작들을 확신으로 만들어주며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위스키에 대한 취향과 그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다가 온갖 종류별 위스키 티셔츠를 소장하고 있음에도 아침부터 위스키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면 남들 눈에 알코올의존증 아저씨도 보일지 몰라 그리 자주 입지는 않는다는 마무리를 따라 읽다 보면 위스키에 대한 조예가 무척이나 깊었던 어른은 어느새 수줍음이 많은 소년으로 변해있다. 


얼핏 티셔츠 종류가 다 달라보이는데 그러면서도 뭐랄까, 기준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가게에 가서 세련된 티셔츠 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것보다는 노벨티나 중고매장에서 그럴듯한 것을 사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브랜드 티셔츠는 거의 없습니다. 굿윌 스토어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한나절을 보내거나 그런 걸 좋아하죠. 아, 결국 한가하다는 말이네요(웃음)." p.162 「어쩌다 보니 모인 티셔츠 이야기와 아직 다 싣지 못한 티셔츠들」


무라카미 하루키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재즈, 수영, 마라톤, 맥주, 위스키 등 그의 취향을 이번 책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고매장에서 2달러에 산 독서클럽 티셔츠, 콘서트에 가서 기념으로 산 티셔츠들, 각국 대학 행사에 참여하여 받은 기념 티셔츠 등 수집가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열여덟 편의 에세이와 특별 인터뷰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그의 철학은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꺼내보게 만들면서 읽는 재미 그 이상을 전해준다.


레코드도 50달러 이상은 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죠. 물건을 수집할 때 철학 같은 게 있으신가요?

"네, 있죠. 게임이니까. 룰을 정하지 않으면 게임이 안 되잖아요? 뭐든 돈만 내면 그만이라는 식이 되는 건 재미없죠. 티셔츠도 200장쯤 봐야 이거 좀 괜찮다 싶은 게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세상이라서 일일이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죠. 하지만 그게 또 게임이라서 열심히 봅니다만(웃음)."


한때 가방 속 물건들을 공개하는 '인 마이 백(in my bag)'릴레이가 한창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가방 속을 보며 가방 주인의 취향과 당시의 유행을 엿볼 수 있는 릴레이가 한참 유행일 때 가방 속이 궁금했던 명사들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도 있었다. 그의 가방 속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무라카미 T』를 통해 그의 티셔츠들은 원없이 실컷 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음 에세이 주제는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 is 뭔들'이지만 『무라카미 T』는 더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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