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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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 덤으로 도서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특별하게 여기다 보니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들도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보는 편인데 그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영화 <마틸다>에서 부모에게 방치되는 소녀 마틸다가 혼자 도서관을 찾아가 사서 선생님의 도움으로 더 큰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었고 최근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을 통해 망자의 영혼을 저장하는 도서관까지, 도서관은 장소로서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이야기들도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나에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제목부터 내 소설이었다. 제목만으로도 그냥 먹고 들어가는데 그냥 도서관도 아닌 죽기 직전에만 들어갈 수 있는 자정의 도서관이라 하니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지닌 무수한 베스트셀러 기록과 무려 <어바웃 타임> 제작사의 영화화 확정 등 화려한 타이틀들이 책을 읽기도 전에 수긍부터 하게 만들어줬다. 


 시간이 흘렀고, 노라는 허공을 응시했다.

 와인을 마시고 나니 또렷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번 삶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녀가 둔 모든 수는 실수였고, 모든 결정은 재앙이었으며, 매일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에서 한 걸음씩 멀어졌다.

 수영 선수. 뮤지션. 철학가. 배우자. 여행가. 빙하학자. 행복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중 어느 것도 되지 못했다.

 심지어 '고양이 주인'이라는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혹은 '일주일에 한 시간짜리 피아노 레슨 선생님'도. 혹은 '대화가 가능한 인간'도.

 약이 효과가 없었다. p.39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절친한 친구와의 우정도 예전 같지 않고 직장에선 해고당하고 기르던 고양이는 죽음을 맞이하고... 사는 데 젬병인 주인공 노라에게 삶은 가혹하다. 자살을 시도한 노라는 죽음이 아닌 온갖 다양한 색조의 초록색 책들로 가득한 자정의 도서관에서 과거 학창시절 자주 체스를 두던 학교 도서관이자 현재 노라의 시점에서 자정의 도서관 사서인 사서 엘름 부인의 안내로 다른 선택의 인생들을 살아보게 된다. 헤어진 연인과의 결혼생활, 부모님이 원했던 삶, 절친한 친구와 목표를 함께 하는 삶, 잃어버렸던 꿈을 이루는 삶들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방문하고 노라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도 확장된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죽음 앞에 서면 삶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삶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어떻게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마냥 무서워할 게 아니라 이 삶에 실망해야 다른 책을 펼쳐볼 수 있다. p.192


자정의 도서관에서 삶과 죽음 사이 '회색 지대'의 이동자가 되어 여러 삶을 경험하는 노라의 상황을 보며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벽장 속에서 주먹을 쥐면 원하는 과거로 이동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팀이 생각났는데 마침 <어바웃 타임> 제작사에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영화화를 확정했다고 하니 이토록 매력적인 이야기가 과연 스크린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감이 커진다. 독특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덕분에 빠른 속도감으로 단숨에 읽히지만 사실 소설의 결과보다 그 과정들이 중요하다는 점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만이 가진 강점이자 차별점이다. 노라가 여러 가지 후회들을 되돌리며 경험하는 삶과 그로 인한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흥미진진한 독서 후에도 나 자신이 강하게 남으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다. 노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경험과 그로 인한 과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어느새 나만의 자정의 도서관이 펼쳐져 있는데(나의 경우도 노라와 마찬가지로 도서관이 확실해 보인다) 어쩐지 나의 자정의 도서관은 사방이 검은색, 회색 계열의 책들로 가득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모든 삶이 다 그럴지 모른다. 겉보기에는 아주 흥미진진하거나 가치 있어 보이는 삶조차 결국에는 그런 기분이 들지 모른다. 실망과 단조로움과 마음의 상처와 경쟁만 한가득이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은 순간에 끝난다. 어쩌면 그것만이 중요한 의미인지 모른다. 세상이 되어 세상을 지켜보는 것. 부모님이 불행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성취하겠다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노라는 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배에서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보다 부모님을 훨씬 거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노라는 두 사람을 완전히 용서했다. p.199-200


저자 매트 헤이그는 생소한 작가지만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20대 초반 심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었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살아야 할 이유』로 큰 성공을 거뒀다는 작가의 독특한 이력을 보며 만약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가 소설을 집필한다면 어떤 소재와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펼쳐낼까 하는 엉뚱한 호기심을 가져보기도 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재미뿐만 아니라 무수한 질문과 의미를 던질 뿐만 아니라 소설 자체가 독자들에게 엘름 부인이 되어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기도 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밑줄을 긋게 되는 문장들은 소설 속에서 잘 녹아든 것은 물론이고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개발서에서 만나는 문장이라 해도 이질감이 없어 보였는데 한 권의 소설을 통해 엄청난 위로와 위안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어쩐지 철도 좀 든 것 같다. 



*인플루엔셜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가제본을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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