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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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을 앓으며 수시로 일으키는 발작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스벤과 총격 사건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부모님과 그에 대한 상처를 가진 파커는 새 학기의 시작이 반갑지 않다. 스벤 때문에 파커는 바커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고 둘은 절대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심지어 불과 얼마 전까지 파커의 반려견이었다가 동생의 개털 알레르기로 입양을 보냈던 알래스카가 스벤의 도우미견이 되어 있다. 알래스카를 스벤의 곁에 단 하루도 머물게 할 수 없다. 알래스카를 데려와야 한다. 

 

 "여기에 다시 와도 될까?"

 여자애가 조심스레 묻는다.

 "당장 내일 밤은 아니고. 음, 어쩌면 내일모레? 그때도 너 집에 있어?"

 꿈만 같은 이야기다.

 저 애가 내가 며칠 뒤 밤에도 침대에 누워 있을지 묻고 있다.

 "데이트 신청이야?"

 내가 묻는다.

 하지만 여자애는 대답하지 않는다. 저 애의 관심은 오직 털 뭉치 괴물뿐이다. 보아하니, 아직 오백 군데도 더 쓰다듬어야 하는 모양이다.

 "다시 올게."

 여자애가 속삭인다. 나한테가 아니라 개에게.

 "꼭 다시 올게." p.68-69

 

『안녕, 알래스카』에서 '안녕'을 당연하게 작별 인사의 안녕으로 인식하여 소중한 반려동물과 이별하는 슬픈 이야기의 소설일 거라고 크게 착각을 해버렸다. 거기에 뇌전증을 앓는 소년의 이야기로 소설이 시작되니 눈물바다를 예상했었는데 소설은 나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갔다. 스벤과 파커의 시점이 교차되어 벌어지는 사건들은 내내 용감하고 씩씩하게 진행되며 사춘기 아이들의 반항심리 속에서 반려동물, 장애, 사이버 폭력 등 현대 사회가 지닌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건드리고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학교에서 발작을 일으킨 스벤의 동영상이 전교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장면, 알래스카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가 결정권을 알래스카에게 주고 난 후 그 과정을 부모의 이혼 과정 속에서 엄마와 아빠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아이들의 상처에 대입하는 장면에서 허를 찔리기도 했다. 

 

 도우미견을 못 본체하고 지나가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의 볼을 꼬집고 지나가지는 않잖아? 또 비행기 조종 중인 조종사의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우지 않잖아? 알래스카도 경찰이나 비행기 조종사와 다를 게 없다. 알래스카가 덮개를 두르고 있으면, 도우미견으로서 일하는 중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멍청한 구경꾼들의 무례한 손놀림을 기다리느라 가만히 있는 게 결코 아니란 말이다. p.112 

 

안나 볼츠는 『안녕, 알래스카』를 통해 사춘기 아이들의 시선으로 현대사회의 병적인 문제들을 건드리면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대형마트 안내견 거부 사건, 불법 촬영 인터넷 유포 등을 통해 드러났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안녕, 알래스카』를 통해 다시금 들여다보게 된다. 반성할 게 많고 남은 숙제가 많은 이 시대에 『안녕, 알래스카』는 모두가 만나봐야 할 이야기다. 

 

의 표지 이미지는 겨울에 가까워 보이지만 『안녕, 알래스카』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화성인 스벤과 복면 소녀 파커는 한 뼘 더 성장했고 스벤과 파커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는 어른이 되어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을 마주하고 되새겼다.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근거 없는 용기와 자신감이 솟구친다. 다 잘 될 거다. 스벤도 파커도 알래스카도, 『안녕, 알래스카』도.

 

 

* 문학과지성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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