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품절




책장의 변화를 통해, 도서관 이용 변화를 통해 최근 몇 년간 내 독서 목록에도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내 책장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림책, 아동, 청소년 소설 코너가 생겼고 도서관 이용도 종합자료실만 들르던 과거와 달리 아동자료실도 자주 이용하며 제대로 즐기고 있다. 덕분에 신작 소식이 들려오면 반가워할 작가의 이름도 늘었고 챙겨읽는 문학상 수상작도 늘었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 출간 소식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 때문이었다. 예전이었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테지만 꼭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작년에 읽었던 허진희 작가의 『독고솜에게 반하면』(제 10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작년 독서 BEST에 들 정도로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는데 독서의 만족은 제1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기대는 물론이고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기대도 더불어 키워주기에 충분했다. 


 노든은 자신이 코뿔소의 겉모습을 가진 코끼리라고 생각했다. 코끼리는 강했다. 마음만 먹으면 바람보다 빨리 달려서 상대를 받아 버릴 수도 있었고, 물소 열 마리보다 무거운 몸통으로 상대를 깔아뭉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코끼리는 무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그것은 곧 싸움으로 번졌고, 싸움은 죽음을 부르는 일이었다. 코끼리는 스스로의 목숨도, 남의 목숨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이 코끼리들의 지혜였다. 노든은 현명한 코끼리들이 좋았다. p.13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의 보살핌으로 자란 코뿔소 노든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동물원 탈출을 함께 꿈꿨던 소중한 친구 앙가부도 잃게 되면서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흰바위코뿔소가 된다. 그 과정과 노든이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펭귄이 함께 바다로 가는 여정을 루리 작가는 아름답고 뭉클하게 쓰고 그려냈다. 노든에게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찰나였지만 그의 모든 여정에는 늘 사랑이 함께 한다. 긴긴밤을 함께 공유하고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가슴 따뜻해지고 뭉클해지는 사랑과 용기가 어느새 나에게도 전해진다. 이렇게 작고 예쁜 책에서 이토록 진한 감동을 느끼고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 『긴긴밤』은 여러모로 상상 이상을 전해주는 소설임을 곳곳에서 느끼게 된다.


 멀리서 보면 사막은 황량해 보이고, 그 위를 걷는 나와 노든은 가망이 없는 두 개의 점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본다면, 모래알 사이를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개미들과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 빗물 고인 웅덩이 위에 걸터앉은 작은 벌레들 소리, 조용히 스치는 바람과 우리의 이야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은 모래 속에 숨은 생명들로 가득했다. 살아남은 기적은 우리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p.107


『긴긴밤』을 읽는 동안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잊고 있었다. 장르와 세대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고 그만큼 좋았다는 만족이 컸지만 한편으론 내가 정말 어린이였을 때 이 작품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에 어린이 독자들에 대한 질투가 남기도 했다(그러니 여러분 하루라도 어릴 때 이 소설을 만나세요). 노든과 코끼리 고아원의 수많은 코끼리들, 아내와 딸, 앙가부, 치쿠와 윔보 그리고 아기 펭귄까지 함께한 『긴긴밤』의 여정을 앞으로 몇 번이고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을 오래 간직할 것 같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물론이고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들에게도 자신 있게 건네줄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허진희 작가의 『독고솜에게 반하면』의 만족은 『긴긴밤』의 독서로 이어졌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의 만족은 루리 작가의 이전 작품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와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공동 대상 수상작인 은소홀 작가의 『5번 레인』에 대한 독서로 이끌어줄 예정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목록에, 눈에 띄게 넓어지는 독서의 저변에 기분이 좋아진다. 『긴긴밤』의 독서 역시 그러했다. 



* 문학동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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