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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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첫 산문집이 출간됐다. 반가운 요소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백수린 작가님 소설이 좋은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작가님이 번역하신 소설도 넘치게 좋았는데 책과 빵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첫 산문집이 출간됐다고 하니 기대감이 더불어 높아진다. 『다정한 매일매일』은 누가 봐도 백수린 작가의 제목이고 책도 너무 예쁜데 표지 그림이 평소 작가님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작업 사진 이미지와 흡사해 반가움을 더해준다. 책의 분위기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지만 아는 맛이 제일 무섭듯 짐작 가능한 백수린 작가의 산문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되니 빨리 읽고 싶다는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초고를 쓰다 막히면 습관처럼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경계한다고 노력했지만 언젠가 읽은 누군가의 문장이나 표현이 무의식에 남아 내 글에 섞여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같은 것.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이전 소설에 드러난 나의 한계가 이번 소설에서도 반복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소설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상념이 많아지고 마음만 초조해질 때, 내가 나에게 내리는 처방은 과감하게 쓰는 것을 멈추는 일이다. 노트북을 끄고, 긴 산책을 나서거나 강아지를 목욕시키다 보면 기분이 전환되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엉켜 있는 실타래가 점점 더 꼬이기만 할 때면 나는 찬장을 뒤진다. 커다란 볼과, 밀가루, 설탕 같은 것들을 찾기 위해서. 냉장고 안에 계란이나 버터까지 있으면 더 좋겠다. p.69


 


 

고등학생 때부터 베이킹을 시작했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의 책과 작가, 빵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을 그야말로 다정하고 조곤조곤하게 들려주는 백수린 작가의 글에는 갓 구운 빵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작가가 들려주는 책과 책의 저자, 빵에 대한 호기심과 작가의 일상과 추억에 대한 흥미의 시너지는 엄청지만 백수린 작가의 필력은 더 엄청나다. 짧은 토막의 글 속에서 소설가로서의 고민과 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쓴 찬사를 엿보며 백수린 작가에 대한 내적 친밀감과 충성도를 동시에 키워간다. 거기에 본문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김혜림 작가의 일러스트는 산문의 여운을 오래 남기게 하며 책의 온기를 더해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덩달아 떠오르며 당혹스러운가 하면 책 또는 빵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책과 빵으로 이어지지 않아 백수린 작가에 대한 대단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다정한 매일매일』은 작가의 말부터 시작해 독자들을 제대로 사로잡는다. 작가의 말에 실컷 반해놓고 차례를 살펴보며 수록된 작품들을 가늠해보고 작품과 어우러진 빵을 살펴보는 재미도 상당한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호빵이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아 호기심을 극대화하는가 하면 미국의 중서부에서 즐겨 먹는다는 옥수수빵에 프랜차이즈 빵집의 등장으로 멸종한 샛노란 식빵에 건포도가 박혀있는, 이제는 추억이 돼버린 옥수수 식빵을 추억하게 하는 등 책의 곳곳에서 호기심과 흥미를 불어 일으켰는데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백미는 백수린 작가의 필력이다. 이토록 다정한 산문이라니! 한 권은 아쉽다. 제목처럼 매일매일 읽고 싶은 글이다. 

 작업 전, 차를 우리는 시간은 나에겐 기조의 시간이다. 그저 하얀 사각 종이를 사랑했던, 쓰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황홀했던 청순한 마음을 다시금 불러오는 시간,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소설을 쓰기 전에 책상을 치우고, 차를 우리고, 마들렌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접시를 골라 책상 위에 올려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말이 타인을 함부로 왜곡하거나 재단하지 않기를.

 내가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무시무시함에 압도되지 않기를.

 나의 글에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나의 글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를. 

 그리하여 내가 마침내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서 당신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p. 105

나의 경우 슬프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하게도 『다정한 매일매일』에 인용된 책과 빵은 대부분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아직 경험하지 못한 빵들이 많았다. 그리하여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는 꽉 차있고 먹어봐야 할 빵 리스트도 많아졌다. 덕분에 마음이 바빠진다. 개인적으로 최근 좋아하는 작가들이 등단 후 처음 발표한 산문집에서 보여준 패턴들이 흥미롭기도 했는데 2018년 권여선 작가의 등단 22년 만의 첫 산문집 (음식 산문을 가장한 안주 산문집) 『오늘 뭐 먹지?』, 대산 칼국수집 맛나당의 딸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2020년 빵과 책을 굽는 백수린 작가의 첫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까지 첫 산문집을 통해 소설가가 명백하게 보이는 현상이 재밌기도 했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건 덤이다. 백수린 작가 특유의 풍미 가득한 감성과 글발을 닮고 싶어진다.

* 작가정신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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