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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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는 것은 독서량도, 글솜씨도 아닌 마감에 대한 압박과 예민함이다. 서평뿐만 아니라 회사 업무, 일상생활 곳곳에서 마감이나 해야 할 일들을 마주할 때면 오늘보다 더 늙은 내일의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마음과 오늘보다 더 연륜 있을 내일의 나에게 맡기자는 마음이 늘 충돌하곤 하는데 내 안의 방구석 서평가 자아는 늘 오늘보다 더 연륜 있을 내일의 나에게 마감을 맡기고, 발등에 불 떨어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실컷 저주하는 엔딩을 맞이하고 마는 대참사를 매번 경험하고 있다(이 서평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김민철 카피라이터, 이숙명 에세이스트, 권여선 소설가, 권남희 번역가, 강이슬 방송작가, 임진아 일러스트레이터, 이영미 출판편집자, 김세희 소설가가 마감에 대해 작정하고 들려주는 『마감 일기』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미친 기획력과 미친 작가 섭외력에 대한 감탄과 동시에 이건 내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루한 서평을 겨우 쥐어짜내는 아마추어인 나에게 진짜 프로들이 들려주는 차원이 다른 딴 세상의 마감 전쟁 이야기는 공감과 호기심을 제대로 저격하는 책이 분명했다. 

 

 마감이란 닥치면 해결되는 일, 이라고 생각한 적이 저도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닥치면'이 아니라 '닥쳐야' 해결되는 일이더군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제 아이디어와 문장에 대한 부끄러움, 두려움, 불안보다 급박함이 커질 때, 그때 저는 아무 말 난사기가 됩니다. 그러고 나면 이렇게 금세 끝날 걸, 겨우 이 수준으로 끝날 걸, 뭐 한다고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며 질질 끌었나 헛웃음이 납니다. 다음 마감은 지금의 가벼운 리듬과 호흡을 기억하면서 서둘러 끝내자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마감을 일찍 시작해봤자 고통만 길어질 뿐 결국 기일이 지나서야 발동이 걸리는 건 마찬가지라는 시실을 깨달은 십수 년 전부터, 저는 항상 마감 독촉을 집필 시작 신호로 여겼습니다. 그게 잡지라면 며칠의 오차가 생길 뿐입니다. 하지만 책은 다르더군요. 마감 독촉을 받았을 때 집필을 시작하면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이나 오차가 생겨버립니다. 그래서 이번엔 나름대로 일찍 시작한다는 게 첫 문단만 스물두 번 쓰는 불상사를 빚은 것이지요. p.38-39 이숙명 「숨바에서 온 편지」

 

광고계, 출판사, 잡지사, 방송국 등을 무대로 글을 쓰고, 창작을 하며 마감 전쟁을 치르는 8명의 작가들의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가 생생하게 녹아있는 『마감 일기』를 통해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엿보며 나에 대한 끝없는 반성을 하는가 하면 잡지사, 출판계, 방송국의 빡센 마감 현장을 팝콘각으로 읽으며 나도 덩달아 심장이 쫄깃해지기도 한다. 자기개발서, 소설, 에세이의 요소가 녹아들어 읽는 재미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8인의 작가들의 생생한 글맛이 매력을 더 해주는데 책의 표지에선 커피가 넘치듯 책 속에선 매력이 넘쳐난다. 

 

책에 참여한 작가님들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터라 『마감 일기』의 출간 소식을 듣고 반가움도 남달랐었는데 '마감'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글을 풀어가는 방법들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며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16년을 매일 오늘은 물론, 내일의 마감까지 절대 깨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다.'라는 '미리 마감주의자' 김민철 작가님을 가장 공감했더라면 진작에 나는 뭐라도 됐을 텐데 다른 작가님들의 발등에 불 떨어지는 마감 이야기에 거의 끝없는 공감을 하며 연대감을 느끼고 혼자 작가님들과 내적 친밀감을 쌓아갔다. 상상도 못했던 '학교생활 마감'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권여선 작가님 덕분에 마감에 대한 시야를 넓히며 나의 과거를 되돌아 보기도 했고 '미리 좀 써놓으면 될 텐데 동서고금 마감이 닥쳐야 글발이 풀리는 건 사이언스'라는 권남희 작가의 말씀은 나의 게으른 마감을 두둔하게 했고 최고의 교감이 되기도 했다. 8편의 에세이만 실려있는 책이 담백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이 책만큼은 편집자의 편집 후기가 실려야 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즐겁게 읽다 보니 작가님들과 연대, 교감이 장난 아니게 쌓여 마감 동지가 생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8명의 마감 동지들이 있어 이토록 든든하니 프로 마감러가 아니어도 괜찮다.

 

 

 

* 놀(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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