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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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머이브리지를 언급하자마자 그가 내 말을 잘랐다. "올해 머이브리지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책이 나왔다는 거 압니까?"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새로운 기술과 개념이 도입되기 전, 시간은 사람들이 몸을 담그는 강이었다. 

리베카 솔닛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당연히도 '페미니즘'이다. 나에게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즘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이고 그녀의 페미니즘 관련 저서들은 페미니즘 교과서나 진배없는데 아마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로 깊게 인식되고 있는 리베카 솔닛이지만 사실 페미니즘은 그녀를 수식하는 무수한 단어들 중 하나일 뿐이다. 리베카 솔닛이 영국 출신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에 대해 다룬 예술비평집 『그림자의 강』이 출간됐다. '맨스플레인'이란 단어를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유행을 시키는데 일조한 그 유명한 '머이브리지에 관한 아주 중요한 책', 바로 그 책이다. 이쯤 되면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에 대한 호기심에 리베카 솔닛을 향한 기대감이 더해져 무조건 챙겨 읽어야 할 책이 되어버리고 만다. 

 예술적인 장점을 평가할 때 작품과 예술가 본인의 사적인 삶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지는 우리 시대의 질문이다. 중요한 것은 개인사의 파편이 아니라 작품 안에 담긴 윤리 - 물론 이 둘은 절대 무관한 것이 아니지만 - 이다. 예술에는 항상 예술가의 흔적이 남게 마련이다. 머이브리지의 사적인 삶을 대변하는 소외는 그의 사진에서도 분명하게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는 독립성은 이단아였던 그의 삶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머이브리지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거장다운 명징함은, 재판정에서 드러난 감정에 휩싸인 인물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역사의 '위인' 이야기들이 근래에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머이브리지를 살펴봐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그가 없었다면 영화 매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근원에 관한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재능은 다른 데에서도 생겨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재능을 가진 인물의 흔적은 그렇지 않다. 머이브리지에 대한 반응은 복합적이지만, 덕분에 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흘러 다니는 이미지'의 시대를 낳은 완벽한 선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놀라움의 시대, 진부함의 시대, 타락의 시대, 화려한 볼거리와 사악함의 시대,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극적인 성취의 시대 말이다. 1877년, 머이브리지가 플로라도를 개신교 고아 시설에 맡긴 다음 해에 그는 진정 시대의 부모 역할을 맡게 되었다. p.233-234 

머이브리지에 대해 알려진 것들을 살펴보면, 그라는 사람은 그냥 그의 작품으로 가기 위한 텅 빈 통로 정도로만 보인다.

활동사진의 핵심 요소들을 발명하고 영화의 탄생에 영향을 끼치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예술가이자 과학자 혹은 부인의 외도 상대를 죽인 살인자인 머이브리지에 대해 그가 남긴 사진과 그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발자취를 짚어보고 촘촘하게 분석한다. 리베카 솔닛의 예리하고 냉철한 분석이 충분히 짐작 가능하고 그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 이상을 보여주며 독서 내내 쉼 없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머이브리지의 생애와 그의 업적, 미국의 역사에 대한 리베카 솔닛의 통찰은 예리하고 날카롭고 그녀의 글은 더없이 유려하다. 무엇보다 비평가로서의 자세와 태도가 너무나도 근사하다. 진짜란 이런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아무것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지만 나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머이브리지의 동작연구는 다양한 생물 종들이 분화되어 나오는 태초의 생명체 같은 것이었다.

머이브리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었더라면 리베카 솔닛의 시선을 따라 읽으며 풍부한 독서가 되었을 텐데 『그림자의 강』을 통해 머이브리지를 입문하게 되어 아쉽다는 생각이 독서 내내 들다가도 기대 이상의 오랜 독서를 마치고 나서는 리베카 솔닛을 통해 한 인물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과 예술에 대한 비평을 제대로 관통했다는 자긍심으로 충만해진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명민한 지성에 대한 감탄은 예술 비평에서도 크게 빛났고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글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다. 작가의 작품을 풍성하게 이해하고 감상하는 독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더불어 커졌다. 

 

 

* 창비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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