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명화 - 그림 속 은밀하게 감춰진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을 읽다
나카노 교코 지음, 최지영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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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인간의 번뇌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반대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번뇌도 과거에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갖가지 욕망과 번뇌를 천재 화가들이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면 분명 놀랄 것입니다. p.7 프롤로그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유명한 나카노 교코가 명화 속에 은밀하게 감춰진 욕망에 대해 다룬 책 『욕망의 명화』가 출간됐다. 이른바 '그림 읽어주는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른 나는(그럼에도 안목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 건 미스터리다) 책의 출간 소식에 대한 반가움도 남달랐는데 '욕망'이라는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묶었다는 데서 몇 년 전 즐겁게 읽었던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의 『욕망의 힘』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나카노 교코는 어떤 작품들을 다루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에 대한 기대감이 더불어 커졌다. 



 

 롤랭 역시 자신이 지불한 고액에 걸맞은 완성작을 마음에 들어 하고 이걸로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도 불멸이 되었다며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멸이 된 이름은 반 에이크였다. 롤랭의 이름은 그림의 제목에 남았고 그의 얼굴도 그림에 남았다. 하지만 롤랭이 누구인지 무엇을 한 사람인지는 완전히 잊혔다. 정치가는 어지간한 실적이 없는 한 무능한 왕보다 잊히기 쉽다. (무능한 왕은 그 무능함 때문에 기억되고 무능한 정치가는 무능하니까 완전히 망각된다.) 롤랭은 가난한 평민 계급으로 태어났지만 무척 애를 쓰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부르고뉴 공국 필리프 3세(Philippe le Bon)아래서 재상으로 권세를 누렸다. 당시엔 그가 누구인지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력자였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던 그는 훌륭한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하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얼굴만 나온 그림이라면 봐 주는 사람이 적다. 자신이 등장하는 제단화를 그려서 고향 교회에 기진하면 수많은 사람이 보는 것은 물론이고 두 손 모아 기도도 해 줄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 정치가는 그림 속에서 마치 성인인 척하게 된 것이다. 예상외로 이런 타입은 현대에도 있는 듯하다. p.195 얀 반 에이크의 <재상 니콜라 롤랭의 성모>

 

사랑, 지식, 생존, 재물, 권력 5가지의 욕망을 나누고 주제에 따른 작품 선정과 작가와 작품, 당시의 문화, 역사에 관한 비하인드스토리가 폭넓게 펼쳐진다. 작품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호기심을 건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해서 작품 전체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방식이 흥미롭다. 혼자 작품을 감상했더라면 눈길을 오래 끌지 못했을 부분들과 작품의 내외적 비하인드스토리에 대한 이야기가 막힘이 없다. 나카노 교코가 들려주는 작품의 비밀과 반전에 대한 이야기에 명화를 다시 살펴보고 감상하기 위해 쉼 없이 책장을 다시 넘겨보게 된다. 미술을 넘어 그리스 신화, 오페라, 유럽사, 패션, 시대의 배경 등 다양한 분야로 이야기가 확장되는 방법 역시 흥미롭다. 덕분에 익히 알고 있던 헨리 8세와 앤 불린 이야기 이후의 역사 이야기를 미술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작품을 인정해 준 시람은 피카소 등밖에 없을 정도로 극히 적었고 루소는 항상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표현이 주관적이고 치졸하며 주제 의식도 부족하다고 여겨진 데다가, 하층 계급 출신에 교양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모멸감까지 느껴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자기 작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예술가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요점은 인텔리들이 그의 너무나 뛰어난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루소는 자기 뇌 안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미술사에서 루소는 '소박파'(naive art)로 분류된다. 마치 어린이가 열심히 그린 그림 같을 정도로 빈약해 보이는 작품 이미지 탓에 루소 역시 소박한 인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진지하게 모사하는 등 부지런히 공부했고 자기 잣품에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었다. 단순히 순진하거나 선량하기만 한 사람은 어니었다. p.211-212 앙리 루소의 <럭비하는 사람들>


도스토옙스키는 그림의 세로 길이가 2.6미터나 되는 대작인 라파엘로 산치오의 <시스티나 성모>를 제대로, 자세히 감상하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가 작품을 감상해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나카노 교코는 독자들이 작품을 제대로, 자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기꺼이 의자가 되어준다. 압도적인 작품 크기, 생생한 색감과 질감이 표현된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를 쉼 없이 깨우는 위험한 책이기도 하고 나카노 교코가 앞으로 다룰 작품들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작품들을 다룰지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얇은 두께로 금방 끝난 이야기가 못내 섭섭한 점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다. 다루는 작품 목록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의 매력이 그야말로 엄청난 책이다. 


* 북라이프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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