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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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출간됐다. 가장 최근에 읽은 하루키 에세이가 『장수 고양이의 비밀』인데 두 제목이 담고 있는 분위기는 180도 다르지만 이어지는 고양이 제목이 개인적으로 흥미롭다. 하루키라면, 하루키의 에세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익숙하지만(그럼에도 언제나 반갑지만) 아버지에 관한 - 전쟁에 세 번이나 참전했던, 불운했던 시대를 살았던 - 회고는 처음이라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관심이 쏠린다. 작년 <문예춘추>에 기고했을 때 한국 독자들이 바로 인터넷에 번역본을 올리고 찾아볼 정도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작품인데 가을의 시작과 함께 에세이 출간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나 잘 알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잘 몰랐던 하루키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지만 얇은 책 속에서 무수히 마음을 건드려줄 것이라는 건 당연하게 예상된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쉽게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학문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 학교 성적이 늘 신통치 않았다. 좋아하는 일은 끝까지 열심히 물고 늘어지지만, 좋아할 수 없는 일에 거의 관심이 없는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지만,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나의 학업 성적은 그렇게 한심하지는 않아도 절대 주위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적잖이 낙담한 듯했다. 당신의 젊은 시절과 비교해 '이렇게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방해하는 것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데, 왜 좀 더 면학에 열심히 정진하지 않는가'하고, 내 근면하다 할 수 없는 생활태도를 보고 안타깝게 여겼을 것이다. 그는 내가 톱클래스의 성적을 받아주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이 시대의 방해로 걸을 수 없었던 인생을, 당신을 대신해 내가 걸어주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까워하지 않을 심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없었다. 차분히 공부에 집중하려는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학교 수업은 대부분 따분했고, 그 교육 시스템은 너무도 획일적이며 억압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는 내게 만성적인 불만을 품게 되었고, 나는 만성적인 고통(무의식적인 분노를 포함한 고통이다)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서른 살에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 기뻐한 듯하지만, 그 시점에 우리 부자 관계는 이미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지금에 비하면 일상적인 일이었고, 딱히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행위도 아니었던)과거 하루키와 아버지는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고 왔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집에 도착하니 바닷가에 버리고 온 고양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는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지승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뒤를 잇는 문제로 형제들과 고민을 하고 불운했던 시대 속에서 전쟁에 참전해야 했고 이후 매일 아침을 먹기 전 불단 앞에서 열심히 경을 외웠던 아버지의 회상이 하루키만의 감성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복원한 아버지와 주위 사람들의 증언이나 기록을 찾아보며 알게 된 아버지 사이의 간극이 종종 보이는가하면 하이쿠에 심취했던 아버지의 회상에 하이쿠가 비중 있게 다뤄지기도 한다. 그 속에 그 시대의, 일본의 역사가 있고 전쟁을 치른 후 공허만 남은 누군가의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 이야기로,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상당히 거칠게 살았다고 한다. 가혹한 전쟁 체험이 아직도 몸안에 남아 있었을 것이고, 인생이 자신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는 스트레스도 나름 심했을 것이다. 술을 자주 마시고, 때로 학생들을 때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성장하면서, 그 성격도 행동도 점차 온후해져간 듯하다. 때때로 침울해하거나 언짢아하고,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일도 있었지만(그리고 그 일로 어머니는 자주 푸념했지만), 아들로서 집 안에서 불쾌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마 온갖 상념이 그의 마음속에서 차분하게 가라앉아 그런대로 진정되었던 것이리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며 자라지 못했고 끝내 사이가 좋지도 못했던 부자관계지만 불운했던 시대를 감당하며 비인간적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하루키만의 회상은 그의 소설과 많이 닮아있다. 특유의 허무와 상처가 이번 에세이에 많이 녹아있다. 하루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더 좋아하는 소설파,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에세이파로 종종 나뉘곤 하는데 이번 에세이는 하루키 소설을 더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을 전해주기 때문에 소설파, 에세이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하루키가 아버지를 회상하는데 소설파, 에세이파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당신이 그 인생에서 다하지 못한 일을 외동아들인 내가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이리라. 내가 성장하고 자아가 발달함에 따라 나와 아버지 사이의 심리적인 갈등은 점차 심해지고 보다 명확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쪽이나 상당히 강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피차가 자신의 뜻을 쉽사리 굽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신의 생각을 똑바로 얘기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우리는 비슷한 동지였을 수도 있다. 싫으나 좋으나.

다른 글과 같이 엮기 어려워 작은 책으로 냈다는 『고양이를 버리다』에는 하루키의 애정이 많이 엿보인다. 거기에 그가 화풍에 매료되었다는 가오 옌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 어우러져 따뜻함을 더해준다. 워낙 작품이 많은 작가이다 보니 나의 경우 - 특히 에세이의 경우 - 작품이 헷갈리거나 섞이는 웃지 못할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하는데 『고양이를 버리다』는 선명하게 기억될 작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책의 정식 출간 전 프리뷰북으로 먼저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책을 넘기는 방식이 재밌기도 했고 작품 그 자체만으로 특별하기도 했다. 프리뷰북이라 본문만 수록될 거라 예상했었는데 작가 후기까지 수록되어 있어 제작의 세심함, 친절함이 엿보인다. 출판사에 대한 호감이 상승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번 가을 독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로 진하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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