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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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지 싶습니다. 나는 다른 곳에서 나를 더는 원치 않았기 때문에 셋퍼드 마인스에 왔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이 도시를 떠날 겁니다. 나는 두번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두번 쫓겨납니다. 여러분은 나와 관련해서 꽤 불쾌한 얘기를 듣게 될 겁니다. 그런 얘기는 아마 다 아실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할 말은 전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지내는 동안 늘 헌신적이고 충직한 일꾼이었음을 알아주십시오. 비록 지금에 와서 이런 표현은 말 같지도 않겠지만요, 비록 오래전에 신앙은 나를 떠나갔지만요. 비록 여러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요. 여러분이 나를 심판하고 단죄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 말 한마디만 마음에 새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 단순한 말, 우리 아버지께서 사람의 허물을 크게 보지 말라면서 늘 하시던 말씀이지요.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거든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2019년 콩쿠르상을 수상한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가 출간됐다. 콩쿠르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 기대감이 커지고 작품성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데 거기에 "대중성과 문학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이다."라는 극찬의 심사평은 밀려있는 독서 목록의 순서를 바꾸는데 타당한 근거가 돼주었다. 작년 콩쿠르상 수상 뉴스에 실린 작가가 세상 밝은 하늘 표지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며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일 거라 혼자 착각을 했었는데 프랑스어판 표지 부럽지 않은 밝은 하늘이 이어지는 가을날 혼자만의 착각을 가지고 본격적인 독서를 해나갔다.

 

 

다른 믿음이 이전의 믿음을 밀어냈다.

소설의 주인공 폴 크리스티앙 프레데릭 한센(이하 폴 한센)의 이야기가 보르도 교도소에 수감 중인 현재 시점과 덴마크계 프랑스인으로 개인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과거의 시점으로 교차되어 펼쳐진다. 부모님의 갈등, 그와 가족의 인생에서 종교와 국가, 문화가 가지는 의미, 그의 눈부신 사랑 이야기 속에서 한 개인의 일생을 넘어 프랑스 정권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덤덤하게 격랑의 세월을 지나온 폴 한센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에 그가 무슨 이유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는지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이 더해져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강한 인상을 받았던 프랑스어판 표지 이미지의 느낌은 좀처럼 전해지지 않아 내가 이 책에 대해 무슨 오해를 해왔던 걸까 놀라기도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밝은 분위기를 전하는 표지가 전하는 메시지가 전해지며 책의 온기도 따뜻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전서평단용 가제본으로 책을 읽고 난 후 한국어판 표지는 어떻게 나올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인생을 망치는 방법은 무한하다.

마치 폴 한센의 외조부와 그의 엄마가 운영했던 예술영화 상영극장에 상영될 법한 프랑스 예술영화처럼 소설은 내내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 속에 작가가 전하는 철학적 메시지와 때로는 입체적이고 때로는 캐리커처 같은 인물들이 어우러져 콩쿠르상 심사평처럼 대중성과 문학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장폴 뒤부아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의 문체에 제대로 반해 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중이다. 

 

때때로 삶이 기이한 소임을 맡기려고 나를 택했나 싶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는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기엔 어려움이 따르는 소설이지만 독자들을 대책 없이 빠지게 만드는 매력은 너무나 선명한 소설이다. 많은 나라와 장소를 배경으로 무수한 철학적 사유가 묵직하게 펼쳐진다. 독서 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유난히 궁금해지는 책들이 있는데 나에겐 이번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의 독서가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감상평을 남길 것이지만 저마다 느낀 감상과 매력은 다채로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찾아 보며 음미해야 할 부분이 아직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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