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평범했던 일상이 무척이나 그리워지고 있는 요즘이다. 코로나로 인한 예민함과 유난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재확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실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는 평온을 되찾고 천천히 읽으려고 아껴뒀었는데 상황이 악화되고 말았다. 하필이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까칠함이 극에 달했을 때 책을 읽어가게 됐다. 
 
 여행에서 돌아와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게 마흔은 삶의 후광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절이었다. 인생이라는 무대 전체를 비추던 조명이 딸깍 하나씩 사라져가는 때. 조금씩 어두워지고 적당히 흐려졌다. 그게 참 쓸쓸해서 몇 년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다. 늘 핑계와 원망과 후회가 가득했다. 별일 없지 않을 텐데 별일 없는 척하는 사람들이 밉고 별일 없는 척조차 안 되는 내가 또 밉고. 내가 예상했던 인생은 이게 아닌데. 몇 날 며칠을 집 안에 틀어박혀 자꾸 바닥에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러다 강아지도 산책시킬 겸 좀 걷자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렇게 특별한 목표 없이 걷다가 알게 됐다. 마흔을 지나는 건 산책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 같다는 것을. 마흔 이후의 삶은 조명이 꺼지고 암전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마흔을 지나는 길은 단 하나의 핀 조명이 나는 일이었다. 불필요한 요소들이 사라지고 비로소 나 자신에게 몰입하게 되는 때였다. p.7
 
쇼펜하우어 뺨치는 염세주의자였던 20대 초반의 나는 20대 청춘의 소중함을 모르고 낭비하며 빨리 40대가 되고 싶어 했었다. 40대에 대한 기대감이 컸을 리는 당연히 없고 그때쯤이면 미혼과 기혼의 갈래에서 결과가 나왔을 것이고 내가 무얼 하며 사는 사람인지 정해져 있을 거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까지 안정을 이뤄놓은 것은 하나도 없고 여전히 불안하고 심상치 않게 자포자기의 심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 30대 후반이 되어 다가오는 40대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의 워너비가 된 잘 나가는 언니들은 물론이고 소설, 영화 속 인물들까지 40대가 되니 2,30대에 가지지 못했던 여유가 생겨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목소리를 내면서 내가 40대에 대해 느끼고 있는 공포가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재영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마흔이 삶의 후광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는 시절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내 편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밀려왔다. 
 
 조금씩 규모를 줄여가면서 나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닫는 중요한 기회를 얻었다. 결정의 순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질문해야 했으므로 비로소 나 자신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나는 흔들리지만 사라지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마치 개망초처럼. p.55
 
그런데 이재영 작가님, 내면의 여유가 보통이 아니신 분이다. 가평에 정착하여 책방 주인이자 작가로 살면서 산책길에서 만나는 들풀, 들꽃조차 아름답고 소중하게 바라보며 따뜻한 일상을 에세이에 녹여놓는다. 가평과 제주도의 맑은 공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고 여유 없이 까칠했던 마음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 부럽지 않는 이웃과의 정(그런 김치 부심은 부리는 게 맞다), 반려견 하이와 냄새를 섞으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이야기 등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현재를, 내 주위를 뒤돌아보게 된다. 담담하게 읽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흔들려있는 모습이다.
 
 물건도 그렇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그밖의 많은 것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은 자연스레 정리되기 마련이다. 작은 관계, 작은 성취, 작은 성공, 작은 수고, 작은 행복, 작은 즐거움, 음악, 색깔, 향기처럼 아예 손에 쥘 수 없는 것들. 인생에 중요한 건 웅장한 게 아니라 작고 사소해서 긴밀하고 떨어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아닐까. p.208
 
『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를 읽고 난 후 평범했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친다. 마스크 없이 외출을 해도 되는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면 꼭 날 잡고 산책을 하며 이름 모를 들풀, 들꽃들을 자세히 보고 말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워본다. 다시 흔들리는 마흔이 다가와도 이재영 작가처럼 내면의 여유를 키우며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싶다. 50대, 60대를 맞이했을 때는 또 어떠했는지 계속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