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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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난 직후부터 줄곧 다음 작품을 기다려왔었는데 논어 에세이집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 이어 들려온 신간 소식은 조금 의외였다. 그토록 기다려온 교수님의 신간 제목이 하필 『공부란 무엇인가』라니, 마침 나는 2년 전 큰마음을 먹고 다시 시작한 공부를 겨우 마치고 다음 주 그 결과물인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었다. 비싼 돈과 시간을 투자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나이를 먹으니 벼락치기 능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었고 내 생애 더 이상의 공부는 없다는 선언을 한 뒤라 개인적으로 시기가 조금 안 맞았지만 그럼에도 김영민 교수라면 의외의 것들도 상상이상의 것으로 전해줄 거라는 합리적인 기대를 안겨준다.


 섬세함은 사회적 삶에서도 중요하다. 섬세한 언어를 매개로 하여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훈련을 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 거칠게 일반화해도 좋을 만큼 인간의 삶이 단순하지는 않다. 거친 안목과 언어로 상대를 대하다 보면, 상대를 부수거나 난도질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 식의 거친 공부라면, 편견을 강화해줄 뿐, 편견을 교정해주지는 않는다. 섬세한 언어야말로 자신의 정신을 진전시킬 정교한 쇄빙선이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면,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수적이다. 언어라는 쇄빙선을 잘 운용할 수 있다면, 물리적 의미의 세계는 불변하더라도 자신이 체험하는 우주는 확장할 수 있다. 그 과정 전체에 대해 메타적인 이해마저 더한다면, 그 우주는 입체적으로 변할 것이다. 언어는 이 사회의 혐오 시설이 아니다. 섬세한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부를 고무하지 않는 사회에서 명철함과 공동체 의식을 갖춘 시민을 기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수재민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공부의 기대효과」


나는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한 편이라 평소 공부 잘 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조금 비정상일 정도인데 김영민 교수가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것들을 통해 내가 동경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가진 성실한 태도와 자세를 엿보는 것 같다. 가제본에 수록된 일곱 편의 칼럼을 통해 공부와 독서의 필요성과 기대효과 등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며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김영민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학생들의 공부에는 물론이고 학교 밖 사회에서도 유효함을 깨닫게 된다. 김영민 교수의 성실한 독자들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공부'라는 키워드만 보고 그냥 지나치게 될까 봐 걱정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공부습관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듯 공부와 독서 등에 대한 태도 역시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걸, 이런 말씀을 해주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토록 근사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김영민 교수에 대한 신뢰가 더욱 높아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학부모를 대동한 성적 정정 요구에 자신도 어머니를 부르겠다는 유머를 잃지 않는 센스는 보너스다.


 중년이 되면, 차라리 결핍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결핍이 오히려 가능성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청장년 시절의 결핍이 오히려 자원이 되어 있기를. 그래서 결핍으로 고통받기는 했지만, 결핍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사는 인생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나직하게 중얼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공부의 생애 주기」


우리 사회가 닥친 현실과 문제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질문을 던지며 독자 몫의 여지를 남기는 김영민 교수의 글이 가지는 힘은 작은 가제본도 묵직하게 느끼게 해준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표지의 일러스트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일곱 편의 칼럼은 정식으로 출간된 단행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준다. 목차만 봐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든든함을 느끼게 해준다. 대학생 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2년 전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이 책이 존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생에 더 이상의 공부는 없다는 따끈따끈한 선언을 마친 나에게 여전히 유효한 책이다. 작은 가제본을 읽었을 뿐이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꺼내 볼 책이라는데 동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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