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 - 2년마다 이사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 위하여
강병진 지음 / 북라이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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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브런치북 수상 작품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하며 놀라운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좁은 나라에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감탄하며 브런치북 수상 작품들의 출간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데 올해 초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들이 줄줄이 출간 소식을 알리며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강병진 작가의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의 경우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싶어 격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희망을 안겨다 줄 영웅담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드디어 북라이프 출판사에서 출간 소식을 알려왔다. 마침 부동산 규제 뉴스는 코로나급으로 뜨거웠고 전세 만기를 앞두고 무리하며 아파트를 매매해 기쁨보다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지인을 보며 같이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시기에 서울에서 생애 첫 자취를 하며 부동산, 분양 관련 일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버블세븐이라는 단어가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며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어려워지던 시기였다(부익부 빈익빈은 해소가 아니라 진화되고 있는 것 같다). 구청장 선거 공약으로 어느 동네에 재개발을 추진하겠다는 후보가 당선이 되었고 마치 마트에 계란 사러 오듯 집을 매매하러 오는 사람들과 높아진 전, 월세 가격에 전, 월세 만기 후 돈을 더 보태도 더 안 좋은 조건의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한 동네에서 보면서 매일매일 세상에 대한 어이없음과 참담함을 갱신하곤 했었다. 얼마 후 재개발을 약속했던 구청장은 학력위조로 구청장직을 상실했고 그 동네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개발 확정은커녕 논의조차 제대로 된 적이 없어 그때의 기억이 코미디로 남아있다. 당시의 경험은 막연히 동경했던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짓밟아 줬는데 강병진 작가의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를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밀려왔다.


 나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아파트를 계약해서 대출을 많이 받는 것, 역세권에 위치한 넒은 신축 빌라를 계약해서 대출을 많이 받는 것. 하지만 나는 대출이 두려웠다. 어느덧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날은 길어야 10년에서 15년 정도인 나이가 되었다. 대출을 많이 받았다가 그걸 갚지 못한 상황에서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면 나는 아버지의 사례를 반복하겠지. 어머니도 나와 같은 걱정으로 힘들어하셨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버지는 쉰네 살에 첫 집을 샀지만, 나는 마흔 살에 샀다는 거다. 또한 은퇴 후에 집을 산 아버지와 달리,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열심히 갚아 나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p.153


35년 넘게 은평구에 거주 중인 강병진 작가의 내집마련은 조금 색다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살던 작가는 독립을 위해 어머니가 살 빌라를 매매하고 자신이 살 월세를 찾는다. 재산으로 가치를 지닌 집이 아닌 말 그대로 살기 위한 집을 위해, 2년마다 이사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 위해 작가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작가와 함께 집을 고르는 조건들을 같이 따져보고 무수한 공감들을 이루어낸다. 이상과 현실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며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내고 혼자살이를 시작하는 시작하는 과정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부동산 준전문가가 되어있고(피와 살이 되는 부동산 팁이 많다) 가본 적도 없는 은평구라는 지역이 친근해지고 오지은의 노래 <서울살이는>이 저절로 나온다. 


<씨네21>의 영화 기자, <그라치아> 피처 에디터,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뉴스 에디터로 일한 작가가 남다른 필력으로 생애최초주택구입 경험을 웃프게 들려주지만 오래도록 씁쓸함이 남아있다. 마흔에 독립한 아들과 일흔에 첫 싱글라이프가 시작된 작가 모녀를 끝없이 응원하게 되는데 '이제는 당신이 좀 더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작가의 마지막 인사를 그대로 작가에게 건네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90년생이 온다』(이 책도 브런치 수상작이다)를 선물해 화제가 됐었는데 요즘 부동산 규제 뉴스로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는(고민하는 사람은 별로 안 보이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만 보이는 건 착각일까?) 국회의원들에게 강병진 작가의 『생애최초주택구입 표류기』를 돌리고 싶다. 마트에서 계란 사듯이 부동산 투기를 그들에게 기대하는 대한민국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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