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 룸
레이철 쿠시너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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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마스 룸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를 만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가 나를 스토킹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하지만 그는 마음먹었고, 그러고 나니 끈질겼다. 저 일들 중 어느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콘크리트 구덩이 속 인생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 타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p.27


나는 친구인 척 구는 일에 소질이 없다. 누구도 나를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았다.

레이철 쿠시너의 소설 『마스 룸』은 소재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기고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사명감이 생겼는데 시간 순삭 '팝콘각 소설'이라며 출판사에서는 책과 함께 팝콘, 아이스티를 보내줬다. 출판사의 센스 넘치는 마케팅과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돋보이며 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는데 마거릿 애트우드, 스티븐 킹, 조지 손더스 추천은 마치 높은 기대감을 보증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대감과 호기심을 잔뜩 품은 채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수감자들과 함께 '쇠사슬의 밤' 밤샘 호송버스에 동승했다.


 당신은 나를 기다리던 커트 케네디를 발견한 그 밤에 내 운명이 결정됐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내 운명을 결정지은 건 재판과 판사와 검사와 국선변호인이다. p.105


내게는 국선변호인이 배정되었다. 우리는 상황이 달리 흐르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다. 상황은 달리 흐르지 않았다. 결국 여기로 흘렀다.

몇 달 동안 자신을 스토킹하며 괴롭힌 남자를 죽인 싱글맘 로미. 하지만 세상은 미심쩍은 도덕성을 지닌 스트리퍼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이자 직무 수행 중에 입은 사고로 평생 불구가 된 강직한 시민을 아이가 보는 현장에서 죽였다며 그녀의 정당성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변론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국선변호사를 만난 로미는 그녀의 스토커 커트 케네디가 자신을 향해 보인 집착을 법정이 인정하게 만드는데 실패하며 종신형을 두 번이나 선고받고 출산하는 어린 수감자를 방치하는 교도관을 대신해 도움을 주다가 추가 6년을 선고받는다. 수감 중 엄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살아남은 아들의 행방에 대해선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교도관도 자신을 담당했던 국선변호사도 그녀의 부탁을 외면한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수감 중인 로미에게 불행의 그늘은 더욱 짙게 깔린다. 


 교도소 안의 모든 것은 시계에 빨간색 부채꼴을 표시해줘야먼 하는 여자들, 즉 백치들에게 맞춰져 있다. 나는 여기서 그런 백치라고는 본 적이 없다. 교도소에서 만난 여자들 상당수가 글을 몰랐고, 간혹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이들도 진짜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지식층을 이겨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야물지 못하고 열등한 건 아니었다. 교도소 안의 사람들은 정말 지독히도 영리하다. 수감자 규칙과 안내문들이 배려하고 있는 백치들은 이곳 어디에도 없다. p.139


"나는 살아 있어."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별 의미 없지. 난 내 심장을 전기톱으로 도려내버렸거든."

'팝콘각 소설'이란 수식어에 흡인력 있는 전개로 빠른 속도감으로 읽히는 소설일 거라 기대했지만 『마스 룸』은 교도소 내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과거를 짚어보며 우리 사회의 만연한 차별과 편견을 드러내는 소설로 기대 이상으로 진지하고 묵직하다. 레이철 쿠시너는 국가와 가정, 직장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 운 좋게 석방이 되어도 다시 교도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 여성들의 모습 속에서 소외계층의 문제, 인종차별과 인권문제, 부조리한 교정 시스템을 마주하는 독자들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면하고 싶어도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는 것이 독자들의 몫이다. 『마스 룸』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와도 닿아있다.


세상사는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복잡하다. 인간은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멍청하고 덜 사악하다. p.266


절대 바로 잡지 않는다. 저들의 잘못이 나한텐 옳음이 될지도 모르니.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끝없는 불행의 늪으로 밀어붙이는 로미를 비롯한 교도소 내 많은 재소자들을 통해 레이철 쿠시는 소외계층이 느끼는 박탈감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데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소설에 빠지게 한다. 그러니까 '팝콘각 소설'의 초점은 빠른 속도감이 아닌 강한 집중력에 맞춰져 있다. 레이철 쿠시니가 『마스 룸』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가 현대사회에 진한 흔적을 남기며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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