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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
모치즈키 이소코 지음, 임경택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5월
평점 :

"도쿄신문, 모치즈키입니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되풀이해서 묻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부 기자도 잘 모르는데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사회부 기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심은경 배우가 주연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에 대한 다양한 이슈들 때문이었다. 언론자유가 줄어든 아베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에 반기를 들고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의 기자회견에서 다른 언론사들이 절대 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제대로 된 대답을 받기 위해 집요하게 날선 질문들을 던져 화제를 모으고 일본 언론 자유의 상징이 된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를 모티브로 그녀의 에세이와 동명인 영화를 제작하며 캐스팅부터 개봉까지 험난했던 과정들을 전해 들으며 느꼈던 감정은 가짜 뉴스와 기레기가 넘치는 한국 언론에는 왜 모치즈키 이소코와 같은 상징적인 인물이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대부분이었다.
심은경 배우의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모치즈키 이소코에 대한 관심이 몰리면서 뒤늦게 그녀의 에세이 『신문기자』가 한국에도 출간됐다. 개인적으로 『신문기자』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이 의외인듯하면서도 반가웠는데 작년 이맘때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 덕분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통해 앞으로 출판계에서 주목해야 할 작가를 소개받은 것처럼 반가웠었는데 이번 여름에도 『신문기자』를 통해 확실하게 기억해야 할 이름이 또 하나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아베 정권은 코로나 사태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언론자유 탄압으로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었고 『신문기자』는 지금 시기에 꼭 읽어야 할 책이 되어버렸다.
경제부 시절, 제2차 아베 정권 아래서 해금된 무기 수출 문제를 취재하던 때부터 패전 후 일본이 줄곧 지켜온 민주주의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지금의 평화를 아이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금 모습 그대로 나아가도 괜찮을지 수없이 고민했다.
인터뷰를 계속해가면서 마에카씨가 품은 생각에 점점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형용할 수 없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나의 차례이다. 위기감을 느끼며 머리가 뜨거워질 때, 내 생각을 공유하고 글로 정리해야만 비로소 침착해진다.
이튿날, 인터뷰의 핵심인 내부 문서 관련 내용을 조간 1면에 실어 내보냈고, 그다음 날 조간에는 주요한 1문 1답 인터뷰를 크게 게재했다.
마지막에는 마에카와 씨가 했던 말로 끝을 맺었다.
'내 행동에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겠지만, 나는 단지 돈키호테일 뿐이다.' p.146-147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2학년 때 포토저널리스트 요시다 루이코의 책을 읽고 자극을 받아 기자의 꿈을 키워나가는 어렸을 적 이야기부터 동경해왔던 신문기자가 되어서 자신만의 취재원을 만들고 직업적 사명감, 긍지를 가지며 사건을 취재하며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과정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모치즈키 이소코의 넘치는 노력과 열정이 어느새 나에게도 전염된 것 같다. 유학에 오르기 위한 노력의 과정들을 따라 읽으며 그녀의 열정의 에너지에 감동을 받다가 발복을 삐어 목발을 짚고 떠난 여행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친 일화를 보곤 남다른 넘치는 에너지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무엇을 하든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면서도 그 과정을 즐길 줄 아는 태도는 신문기자가 되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빛을 보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왔던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모치즈키 아소코만의 열정과 즐길 줄 아는 태도가 취재 현장에서 느끼는 일본 언론의 한계에 맞서 언론의 자살행위를 까발리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의 기자회견 설전을 모치즈키 이소코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흥미롭게 읽어가지만 당시의 생생한 현장 분위기보다 기자로서의 고민과 사명감이 크게 읽힌다.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다시 물어야 했다. 끈질기게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사회부에서 오랜 시간 취재하며 단련된 근성이다. p.173
모치즈키 이소코는 『신문기자』를 통해 스기 요시히데 관방 장관과의 설전뿐만 아니라 이직에 대한 고민, 취재 과정에서의 실수, 동료 기자와의 연대 혹은 외면, 기자로서 총체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유명 저널리스트의 미투 의혹을 다루며 피해 여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의 기자로서의 태도와 고민이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씁쓸하게도 세월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단원고에 모였던 기자들이 생각났다. 본인의 장래희망이 기자였다는 학생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양심과 신념을 버리고 취재하는 기자들을 보며 장래희망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은 '직업병에 걸린 기자분들께'로 시작했다. 기자의 직업병이 직업윤리를 져버린 채 취재 경쟁을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모치즈키 이소코가 요시다 루이코의 책을 읽고 감명받아 기자가 됐듯이 모치즈키 이소코의 모습을 보고 기자의 꿈을 키우는 '모치즈키 이소코 키드'들이 언론사를 누비는 날들도 곧 올 것이다. 우리에게도 모치즈키 이소코와 같은 모델이 있었으면, 모치즈키 이소코 키드가 많이 자라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