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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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에 관한 고민과 연구는 더 이상 창작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의 필요성, 중요성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들과 콘텐츠들이 있지만 윌 스토의 『이야기의 탄생』은 스토리의 원칙을 뇌과학으로 풀어낸다는 흥미로운 소재로 뚜렷한 차별점을 둔다. 스토리텔링에 관한 기법들을 흥미롭게 나열한 책인 줄 알고 기대했는데 스토리텔링과 뇌과학이 만나 기대 이상, 상상이상의 재미와 지적 자극을 전해준다. 윌 스토는 서론에서 이 책이 스토리텔링에는 관심이 없어도 인간 조건의 과학에는 호기심을 느끼는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끌길 바란다고 고백하지만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없고 과학에도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관심을 완전히 끌어냈다. 

 

 은유와 은유의 사촌격인 직유는 텍스트에서 한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마이클 커닝햄의 『세상 끝의 사랑』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녀는 낡은 비닐봉지를 씻어서 빨래줄에 걸어 말린다. 알뜰하고 축 처진 해파리가 햇빛 속에 줄줄이 떠 있다." 이 문장의 은유는 기본적으로 정보의 격차를 빌리는 식으로 작동한다. 우선 우리의 뇌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비닐봉지가 어떻게 해파리가 될 수 있지? 우리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 장면을 상상한다. 커닝햄은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관해 더 생생한 모형을 만들도록 유도한 것이다.

 마거릿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시각적인 장면이 아니라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은유를 사용한다. "그의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자물쇠도 없고 열쇠도 없는 문처럼 그녀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p.69

 

기자이자 소설가인 저자 윌 스토가 매력적인 인물과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들 속에서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인식하는지 알려주는 방식에는 막힘이 없다(당연히 저자가 과학자인 줄 알았던 몹쓸 편견 덕분에 작가의 정체가 마치 반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소재의 신선함에 대한 흥미와는 별개로 책이 어렵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쉽고 재밌게 거침없이 읽힌다,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의 다양한 예시들이 쉼 없이 나열되며 이해를 도와주고 지적 유희를 안겨주는 윌 스토의 이야기 방식은 책을 읽어가는 내내 인상적이다. 작가가 엄청난 스토리텔러임을 책을 통해 증명하고 있는데 동의가 되고 더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수한 작품들의 예시와 비유에서 작가의 문화적 소양에 대한 감탄으로 이어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들을 볼 때면 남다른 상상력에 감탄하며 그의 뇌가 궁금해지곤 했는데 『이야기의 탄생』을 읽으면서 뇌과학과 스토리텔링을 결부시켜 이토록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윌 스토의 뇌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소설가로 그는 어떤 인물들을 창조해내고 어떤 서사와 플롯을 구축하는지도 궁금해진다.




예전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는데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가끔 신인 작가들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었다. 당시엔 그 말이 쉽게 이해는 가지 않아도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었는데 『이야기의 탄생』에서 들려주는 인물의 성격, 이야기의 플롯과 질문에 관한 과정의 세세한 탐구를 지켜보며 스토리텔링의 이론과 원칙 그리고 그에 관한 적용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우리가 얼마나 틀렸는지 우리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데 있다. 우리의 신경 모형에서 취약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그 부분의 외침에 길을 기울인다는 뜻인데,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감정적이고 일방적일 때는 대개 우리 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부분을 넘겨주는 때이다. 이 지점에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가장 왜곡되고 예민해진다. 이런 결함을 마주하고 고쳐가는 일은 평생의 싸움이 된다. 이야기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이기는 것이 영웅이 되는 길이다. p.265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가 스토리텔링은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에 관해 추구하는 방향과 개인적 고민은 사실적 글쓰기와 글을 쓰는 속도에 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토리텔링도 과학도 관심분야가 아닌 나에게 윌 스토의 『이야기의 탄생』은 딱 내 책이었다. 영국의 배우이자 희극인인 로버트웹의 추천사처럼 『이야기의 탄생』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어도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모두를 위한 책이다. 작가, 창작자들로 독자들을 한정하지 않고 모두가 감탄을 자아내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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