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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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 겨우면 사람이 미칠 수도 있다. 어디선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이젠 그 말을 믿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두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현실을 직시하도록 스스로를 거세게 밀어붙일 것이다. 그 현실이 제아무리 불행하다 하더라도, 희망 같은 건 가져서는 안 돼. p.13


그녀는 아직도 외아들을 잃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1년 전 최고의 전문가를 보호자로 간 스카우트 캠프는 버스 사고로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혼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 대니를 잃은 충격에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는 엄마 티나. 최근 대니가 살아 있는 꿈에 계속 시달리는가 하면 '죽지 않았어'라는 메시지를 누군가 계속 보내오고 저절로 라디오가 켜지는가 하면 갑자기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등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을 반복해서 겪으며 혼란스럽다. 충격이 커서일까? 인사불성이 되었던 지난밤 그녀의 행동일까? 기억상실? 누군가의 장난? 유령인가? 아니면 폴터가이스트 현상?  계속되는 충격에 티나는 대니의 무덤을 보고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직시하기로 마음먹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계획은 국가적 음모로 확대된다.


처음에 들었던 호기심은 차츰 공포로 변해갔다. 이 곳은 뭔가 아주 잘못되었다. 불길한 기운이 그녀를 둘러싼 공기를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딘 쿤츠의 장편소설 『어둠의 눈』이 현재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건 40년 전에 발표한 이 소설이 현재 전 세계를 패닉 상태에 빠트린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이라는 흥미로운 이력 때문이다. 바이러스 사태를 예견한 재난 영화들이 이번 사태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와중에 정확히 우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 이미 40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은 전 세계 독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많은 나라에서 역주행하며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2020년 최고의 화제작이 드디어 한국에도 출간되어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어둠의 눈』을 따라 읽어가며 흥미로운 역주행 열풍에 빠르게 동참하게 됐다.


 바로 어젯밤 꿈에 나타났던 흉측한 남자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오늘 이 자리에서 떡하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티나는 마분지 상자에서 뒷걸음쳤다.

 그림 속 괴물의 형상에서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이쪽으로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대니가 잡지를 사 온 날 이 무시무시한 그림을 봤던 게 틀림없다. 그림을 본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 지긋지긋하도록 단단히 박혀 있다가 결국 악몽으로 나타난 거다. 

 이렇게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티나는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p.197


"있죠, 마치……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우한 바이러스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독서를 시작하지만 사실 『어둠의 눈』은 바이러스 전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사태의 현실과 흡사한 이야기를 다뤄  현재 사태를 예언했다거나 현재 상황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은 아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충격과 그런 엄마에게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과 드러나는 정부의 음모는 오히려 넷플릭스의 인기 호러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와 더 닮아 있다. 

티나와 엘리엇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듯이 450페이지의 소설 역시 단숨에 빠져들며 몰입도를 높여준다. 화려한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의 상실감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며 생겨나는 혼돈은 우울과 기묘함에 잠식되지만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티나의 추적이 시작됨과 동시에 소설 속 기류도 180도 달라진다. 소설이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대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과 정부의 음모,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우한 바이러스에 대한 의문과 긴장감이 팽팽해진다. 소설에서 카지노 딜러로 일하는 티나의 전 남편이자 대니의 아빠인 마이클이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경험하는 여러 가지 증후군에 대해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고 다른 일을 잊은 채 도박에 빠진 중독자들처럼 『어둠의 눈』 역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고 다른 일을 잊게 할 만큼 독서에 제대로 빠지게 해줬다. 흡인력 있는 미스터리 속에서 작가 딘 쿤츠는 가부장제, 신분사회에 대한 모순을 꼬집으며 인물들의 내면과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작품에 대한 완성도를 높여준다. 




 "나는 중국인들이 너무 무섭소. 지구상에서 이런 무기를 사용할만한 나라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중국일 거요. 아니면 북한이나 이라크 정도일까. 미치광이 정권은 시대가 지나도 계속 생겨나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강력한 방어력을 갖춰야 하오. 난 그 점은 확실히 믿소. 하지만 가끔 ​…… 궁금하다 이거요. 우리가 적을 앞지르기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노력하는 동안, 어쩌면 우리도 그들처럼 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경멸하는 그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가는 것 같지 않소?"

 "그럴지도요."

 "그럴지도." p.322


『어둠의 눈』은 코로나 마케팅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며 40년 만에 역주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소설이다. 사실 코로나 마케팅은 엄밀히 말해 낚시성 홍보에 가깝지만 작품에 대한 흥미와 완성도가 높으니 낚시를 당해도 좋은 작품을 만나 기분이 좋다.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작품이 40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 덕분에 역주행 열풍을 함께 하며 딘 쿤츠라는 작가를 기억하게 됐다. 책날개 작가 소개에 "미국 언론은 그를 일컬어 "스티븐 킹이 소설계의 롤링스톤스라면, 딘 쿤츠는 비틀즈다!"라고 극찬했"다는 글이 이목을 사로잡는다. 『어둠의 눈』 이후 그의 작품이 더 왕성하게 출간되어 많은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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