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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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찾아야지. 날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야."
3년 전 딸 리나가 실버 로드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된 후 렐레는 딸을 찾기 위한 목표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망가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백야가 시작되면 그의 수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색이라는 단어보다 집착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그의 에너지는 리나가 사라져서 슬퍼하는 것이 아닌 리나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의 눈엔 모든 사람들이 딸의 실종과 연관된 용의자들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 어느 날 딸과 비슷한 외모의 여학생 한나가 실종되어 또다시 마을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두 소녀의 실종은 연관성이 있다고 렐레는 경찰보다 먼저 깨닫는다.


"맨정신인 사람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엄마하고 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술과 약에 의지하며 딸을 방치하는 엄마. 그러면서도 딸에 의지하는 엄마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남자와 살기 위해 메야와 함께 글리메르스트레이크로 이주한다. 포르노 잡지 수집광인 엄마의 동거남 토르비요른은 어딘가 이상하지만 그녀를 추행했던 엄마의 예전 남자친구들과 달리 자신을 추행하진 않는다. 어느 날 호수에서 칼 요한 형제들을 만나게 되고 칼 요한과 사랑에 빠진 메야는 지긋지긋한 엄마를 떠나 칼 요한의 가족들이 사는 스바르트리덴으로 거처를 옮긴다. 스웨덴 법보다 자신들의 생존과 자유를 우선시하며 정규교육과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지구 종말, 멸망을 믿는 그들은 메야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화목한 가정이다.


 렐레는 리나가 감금되어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것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렐레는 처음부터 아네테에게 리나가 납치됐다고 말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군가는 리나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며, 렐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게 누군지 알아낼 작정이었다. 리나가 사라진 그해 여름에 렐레는 마을에서 혼자 사는 남자들 그리고 괴짜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지하 저장실과 다락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욕을 먹기도 했고, 커피를 마시고 가라는 초대를 받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외로움만 남았다. 사방에 그런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만 남았다. 외로움은 이 지역의 변두리를 좀먹어갔고, 다른 가족은 모두 떠나고 홀로 남은 사람들 사이에 병처럼 퍼졌다. 그리고 이제는 렐레도 그들 중 하나였다. 외로운 사람들 중 하나였다. p.97


"이 시궁창 같은 마을에서 성자가 되고 싶으면 연기처럼 사라지면 돼. 그럼 다들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말하려고 경쟁할 테니까."
북유럽의 백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실버로드』는 딸의 실종에 집착하는 아버지 렐레와 엄마와 낯선 곳에 이주하여 새로운 가족과 함께하는 메야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3년 전 실종된 리나의 행방을 뒤쫓는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남다른 흡인력을 보여주며 책을 읽어가는 내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게 한다. 렐레의 시선처럼 모든 이들이 리나의 실종에 관련된 용의자처럼 보이는데 부제 '사라진 소녀"들"'이 신경이 쓰이며 또 다른 전개에 대한 의문과 긴장이 스릴러의 매력을 더해준다. 또 다른 실종자 한나의 사건이 발생되고 2부의 시작이 렐레와 메야가 아닌 새로운 화자로 시작되며 흥미를 더해준다. 과연 그녀는 누구일까?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매는 리나? 새로운 실종자 한나?


"벌써 3년이야. 어떨 때는 어제 일 같았다가 또 어떨 때는 한 평생이 지난 것 같아."
『실버 로드』는 스릴러의 재미와 긴장을 제대로 경험시켜주며 남다른 흡인력, 집중력을 이끌어내지만 독자들이 『실버 로드』에 빠지는 건 스릴러적 요소 하나만이 아니다. 신예 작가가 데뷔작으로 2018년 스웨덴 범죄소설상을 수상, 2019년 북유럽 최고의 장르문학상 수상이라는 놀라운 성공을 이끌어 낸 데에는 작가 스티나 약손의 놀라운 스토리 구성과 필력이 더해져 장르문학 그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실종된 소녀들에 대한 긴장과 재미도 충분하지만 딸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이 내내 슬프고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엄마를 못 견디고 국가를 부정하며 자급자족하고 살아가는 칼 요한의 가족들과 함께하는 메야는 복잡하다. 그 감정들을 생생하게 살피면서 스릴러적 긴장도 놓지 않는 스티나 약손의 대중성과 문학성은 이미 완성형이다. 영화적 요소들도 많아 영화화가 결정되는 게 당연해 보이는데 아직 그런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라 할 정도로 그야말로 완벽하다. 거기에 시적인 문장들은 예술성까지 더해주는데 소설의 첫 문장 '숲과 호수 위에 걸린 빛이 그를 찌르고 태우고 찢었다.'라는 문장에서부터 이 소설에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눈길이 머무는 문장들도 쉼 없이 펼쳐지는데 시를 써도 잘 쓸 것 같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수시로 들 정도였다. 화제의 데뷔작 『실버 로드』를 집필한 동기가 그녀의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운데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며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악몽 같은 3년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이 세상은 추악하고 믿을 수 없는 곳이며, 노를란드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p.192 

『실버 로드』는 스티나 약손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뚜렷하게 기억시킨 작품이자 『렛 미 인』, 『밀레니엄 시리즈』에 이어 스웨덴 범죄, 스릴러의 계보를 이어주는 작품이다. 서사가 강한 스릴러의 경우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데 크게 집중하여 결말을 알게 되면 거기서 끝나 다시 읽어보거나 하는 경우는 드문데 『실버 로드』는 다시 챙겨 읽게 될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스티나 약손의 차기작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된다. 스릴러 소설에서 만나게 된 '슬퍼 보이는 창유리에 밤하늘이 비쳤다. (p.100)', '삶에 의해 풍화되고 물들고 싶었다. (p.160)' 이런 문장들은 스티나 약손만이 녹여낼 수 있는 문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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