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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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댁이 데이트할 만한 살인마가 없는 모양이지?"

마을에 어린 소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소녀들을 죽인 살인죄로 사형수로 복역 중인 데니스.

데니스의 결백을 믿으며 그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결혼을 감행하는 서맨사(샘).

데니스의 무죄가 입증되어 사면 받고 행복한 나날들을 꿈꾸지만 샘의 일상은 불안과 미묘한 공포로 잠식되어 편집증적인 망상에 휩싸이게 된다.

정말 소녀들의 실종과 데니스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샘을 불안하게 만드는 감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건 망상이야. 넌 그 남자에 관해 아무것도 몰라."

데니스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의 결백을 믿으며 온라인 모임에 빠진 샘은 데니스와 사랑에 빠져 직장과 가족, 고향을 버리고 그와 결혼을 감행한다. 사건의 진범이 나타나 데니스는 무죄를 입증받고 사면되지만 교도소 밖에서의 데니스는 샘이 사랑에 빠졌던 교도소 안의 사형수 데니스와는 다른 사람이다. 데니스의 사면과 동시에 소설의 공기는 180도 달라지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소설 초반 샘이 데니스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이 공감 되지 않았는데 사면 이후 180도 달라진 데니스의 모습에 소설은 본격적인 '언니 그 남자 만나지 마요'의 흐름을 타며 긴장감과 흡인력을 높여준다.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이 가지 않아 감정이입이 힘들지만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증폭되면서 소설의 결말을 향해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샘은 옛날에 키웠던 고양이 타이거를 떠올렸다. 타이거는 몇 번이나 사라졌고, 하루가 지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나타났다. 그때마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샘은 고양이를 걱정하는 게 싫었고, 걱정하게 만드는 고양이를 원망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독립적인 삶과 독립적인 생각이 있는 존재를. 마음 내키는 대로 오고 갈 수 있는 존재를. 사랑은 샘을 힘들게 만들었다. 샘은 고양이가 죽었을 때 슬프기보다 안도감을 느꼈다. 샘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더 이상 샘을 괴롭히지 못할 테니까. 사랑을 멈출 수 있을 테니까. 이제까지 녀석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데 샘은 새삼 놀랐다. 벌써부터 샘은 그 좁은 공간 밑에 있는 고양이와 새끼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추울까? 비가 오면 어쩌지? 라쿤이 다시 오면? 라쿤이 새끼 고양이를 잡아가면 어쩌지? p.249-250


작가 에이미 로이드는 『이노센트 와이프』를 통해 미스터리 서스펜스로 긴장감 있는 스토리를 탄탄하게 완성하여 장르문학으로써의 재미를 확실히 전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흡인력 있는 서사 속에서 학대 아동에 대한 사회적 문제, 페미니즘, 백인의 입장에서 역차별 당하는 인종차별 문제, 편견 등을 다루며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식들을 묵직하게 다루며 작가만의 색채를 제대로 구현해냈다. 데니스를 아는 이웃들은 거의 하나같이 그를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동의하지만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를 믿고 무죄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 또한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내 장르소설의 재미 그 이상을 전해준다. 


 샘은 속이 울렁거렸다. 데니스가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들이는 동안 샘이 생각한 것은 거미의 단말마보다는 데니스가 담배를 빨아들일 때 기침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데니스가 평생 담배를 피워왔는데 나만 몰랐던 건 아닐까. 불현듯 외톨이가 된 기분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마치 샘과 결혼한 남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자다 깨보니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줄거리를 알지 못하는 이야기 한복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p.339


『이노센트 와이프』는 흐름출판에서 처음 출간하는 소설이라 반가움과 기대감이 남달랐다. 스테디셀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하는 소설이 미스터리 서스펜스 장르라 하니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 스릴러 작품들을 출간해 기존의 출판사 색과는 또 다른 색을 확실히 발산하며 스릴러 맛집으로도 불리는 다른 출판사의 사례가 떠오르며 그만큼 기대치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나를 찾아줘> 제작사의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인물들의 세밀한 심리묘사, 독자들을 자극하는 공포심, 작가가 다룬 사회 문제들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머리카락에만 흥분하는 남자, 그 남자를 완벽하게 사랑하는 여자'라는 홍보문구에 그대로 낚여 영화 <미녀 삼총사 2>에서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변태남을 떠올리며 데니스가 머리카락에 흥분하는 장면이 나오길 기다리기도 했는데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은 나만 가진 소설의 재미와 추억이 되었다. 샘은 데니스가 건네는 녹차를 마시며 녹차가 자신의 속을 정화해주고 자신은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데 『이노센트 와이프』의 독서 역시 그러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나 역시 정화될 필요가 있었고 속을 정화해 줄 녹차 한 잔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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