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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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업트럭을 타고 오는 내내 할머니가 나 때문에 사람들 볼 낯이 없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듣게 될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뒤였는데, 할머니는 울고 있었고, 할머니가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본 게 처음이었고, 정확히는 그 누구든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저 먼 곳에서 일어났다는 교통사고며, 뉴스며, 죽은 엄마 아빠며, 나를 용감한 아이라고 부르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부드러운 가슴에 안아주고 탤컴 파우더와 아쿠아 넷 스프레이 냄새를 풍기는 할머니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따끔거리면서 번지더니 문득 속이 메스거렸다. 마치 숨을 들이쉴 때마다 토사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머리가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건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압도적인 메슥거림이 밀려왔다. 엄마 아빠가 죽었는데, 어떻게 마음속 어딘가에서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던 걸까? p. 49-50


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출간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제목과 표지 디자인도 확정되기 전이었다. 책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원작으로 개봉한 영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의 포스터 이미지 만으로 책의 존재를 알게 됐지만 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요소들이 넘치게 많았다. 우선 선댄스 영화제 대상 수상작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의 원작 소설이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기대감이 커지는데 영화 포스터에서 클레이 모리츠의 눈빛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도 했고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한 소녀의 눈빛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클레이 모리츠의 눈빛만큼이나 나를 헷갈리게 했던 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대도시의 사랑법』, 『여름, 스피드』를 보신 분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어 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는 출판사의 설명이었다. 퀴어 장르의 공통점은 알겠지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직 안 봐서 모르겠고)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는 서로 다른 매력으로 재미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기에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보여주는 작품의 이미지,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감성들이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고 그만큼 궁금했다.


책의 출간과 함께 확인한 표지는 영화 포스터 이미지와는 또 다르다. 턱을 괴고 정면을 응시하는 빨간 머리 여자의 눈빛 역시 영화 포스터처럼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 소녀와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더 궁금해진다. 곧 10대를 맞이하는 캐머런과 아이린은 둘도 없는 단짝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이다. 캐머런과 아이린이 키스를 하고 상점을 털 때 캠프를 떠난 캐머런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아이린과의 키스를 들키지 않아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죄책감,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의 감정이 뒤섞이며 복잡하다. 외할머니와 이모의 손에서 자라게 된 캐머런에게 새로운 환경이 펼쳐지게 되는데 콜린을 만나게 되며 캐머런의 내면의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캐머런의 감정은 물론이고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 묘사가 생생하다. 무엇보다 지금과 다른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의 시대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는 10대 소녀의 고민과 시련의 과정이 흡인력 있게 읽히고 마음을 이끈다. 아슬아슬한 긴장이 이어지고 결국 기독교 교정 기숙사로 보내지는 캐머런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1권은 끝난다. 2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흡인력 있는 소설의 흐름이 끊겨 아쉽지만 그만큼 기대감도 커진다. 1권의 표지 배경색은 청록색인데 2권의 표지 배경은 파란색이다. 더 진해진 색만큼 진한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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