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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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 마음은 18세 풍랑기

- 장래희망은 웃긴 할머니

- 유쾌 발랄 인생 성장기

- 살면서 가장 꾸준히 한 일은 '나이 먹는 일'

- 본격 나이 탐구 에세이


책을 고르는데 표지가 우선순위가 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임선경 작가의 에세이 『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는 제목에 1차로 반하고 표지의 깨알 같은 카피들에 2차로 반하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표지 디자인보다는 제목과 카피에 반하고 만 것이지만 아무튼 반하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한 표지가 강한 인상을 남기니 다른 것들은 더 이상 따져보지도 않게 되었다. 이어 '갱년기 안면홍조는 수줍음으로, 가슴 두근거림은 설렘으로 포장 중.', '재미가 있어야 의미도 있다는 소신으로 글을 쓴다.'라는 작가 소개 글을 보며 제대로 된 책을 만났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새해가 밝아오고 설도 쇠고 나니 새롭게 맞이한 나이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됐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는 것에 무덤덤해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나이를 먹는 일만큼 끔찍한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는데 올해의 나는 후자의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런 마음가짐은 『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를 읽으며 공감하고 감응하는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제목과 카피에 사로잡힌 마음에 방송국 작가 출신이라는 작가의 이력이 더해지니 책에 대한 신뢰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상승한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마음을 자극하는 제목과 카피와 더불어 일러스트에서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가 떠오르며 기대감이 더 높아지기도 했는데 첫 에피소드부터 난소의 노화와 갱년기를 다루면서 작가가 보통 내공이 아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제목과 카피가 너무나도 강렬했던 덕분에 이 책은 걸크러쉬 이미지의 인생 선배가 제대로 세상을 통찰하여 사이다를 날리는 그런 글들로 가득할 거라 예상했는데 친절한 언니가 미리 세상에 대해 알려주며 놓아주는 예방주사에 더 가까웠다. 더 이상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주사는 여전히 무섭고 아프듯 유쾌하고 경쾌한 글 속에서 예리하고 날카로움이 느껴지며 아프기도 한다. 무엇보다 공감하는 구절들이 많았고 나와는 다른 상황임에도 이해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 책을 읽어가는 내내 책과, 작가와 친밀감을 쌓아가는 기분이었지만 하필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자라면서 빈말로라도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거울을 보는 일 자체를 싫어했다. 한창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뻣뻣한 머리카락부터 넓은 발볼까지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서 마음 깊은 곳부터 위축되기도 했다.'(p.53)는 구절이라는 점은 무척이나 슬프다. 


 병실에서의 할머니들, 일시적이든 평생이든 간에 주변부의 삶을 살아본 사람들, 서로의 사정을 알아주며 함께 나눠 본 사람들, 먹고 자고 입고 씻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에 책임감을 느끼고 꾸준히 자신과 가족을 돌본 사람들, 그래서 혼자서도 잘하는 자생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 장기 입원한 병원에서도 꽃놀이를 한다.


 나의 미래가 그런 할머니들 속으로의 편입이라니.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p.239-240


그야말로 언니 또래의 감성과 공감을 작정하고 이끌어내는 에세이다. 육아에 치여, 살림에 치여, 업무에 치여 일 년에 책을 한 두 권 겨우 읽는(그마저도 베스트셀러 순위에만 의존하는) 언니들에게 이만한 책이 없음을 언니들은 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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