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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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칼라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알게 되고 읽게 된 건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덕분이었다. 어느새 추억이 돼버린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베스트셀러 순위와 작가의 유명세에 의존하던 나의 편협한 독서생활에 큰 변화와 영향을 끼쳤던 독보적인 매체였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다루는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신뢰감은 충족한데 2회에 걸친 방송 내내 이동진 평론가와 이다혜 기자의 찬사로 가득하니 책을 읽기도 전부터 기대치는 높아만 갔다. 하지만 높은 기대에 부응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만족을 선사해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대한 신뢰도까지 높여주었고 더불어 책에 대한 만족감은 출판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데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흐름출판사를 알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유독 스테디셀러를 많이 보유해 지금은 흐름출판사하면 떠올리는 책들이 무수히 많지만 나에게 흐름출판사를 알게 해준 첫번째 책은 바로 『숨결이 바람 될 때』이다.


거의 3년 만에 『숨결이 바람 될 때』를 다시 읽었다. 서른여섯의 외과의사 폴 칼라니티가 폐암을 선고받고 죽음에 직면하면서 써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그의 아내가 마무리하는 2년여의 이야기가 마음의 동요를 크게 일으켰기에 책을 다시 읽는데 나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도 두 번째 독서라 내용과 결과를 알고 있기에 애써 담담하게 책을 읽어갔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크게 동요되고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때때로 죽음의 무게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고통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처럼, 공기의 무게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정글에 갇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환자의 가족이 흘리는 비처럼 맞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2년차가 되면 레지던트는 응급실에 가장 먼저 달려간다. 내가 구할 수 없는 환자도 있고 구할 수 있는 환자도 있다.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를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옮기고 두개골에서 피를 빼내자 환자는 깨어나서 가족에게 말을 건넸고 머리에 절개 자국이 남았다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성취감에 도취된 나머지 병원 안을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길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다. 돌아가는 길을 찾는 데 45분이 걸렸다. p.102-103 


얼마 전 넷플릭스로 공개된 <빨간머리 앤 시즌3>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메리가 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로 남기는 장면을 보면서 폴 칼라니티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딸에게 메시지로 남긴 대목이 떠올랐다. 이 책은 폴 칼라니티가 폐암을 선고받고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 의사이자 환자로서 삶과 죽음에 관해 적어가는 이야기이자 딸을 향한 유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폐암을 선고받고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가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작가는 레지던트 과정을 완수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펼쳐간다. 자신에게 불어닥친 시련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들이 덤덤하게 이어진다. 특별히 크게 슬픔이 몰아치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이토록 큰 감정의 파고가 밀려왔는지 모를 일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죽음을 선고받은 의사가 환자의 신분이 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뒤돌아보고 삶을 정리해간다는 소재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작가가 생생하게 펼치는 철학과 사유로 존재감이 엄청난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 명민한 지성, 의사로서의 직업적 사명감, 세심한 감수성으로 완성시킨 폴 칼라니티의 매력적인 에세이를  『숨결이 바람 될 때』로 밖에 만날 수 없어 안타깝다. 그래서 『숨결이 바람 될 때』가 더 빛나 보이고 특별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껴 읽고 싶은 책이라는데 무조건 동감하게 되는 책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다시 읽을 땐 제법 덤덤하게, 아껴가며 읽어보고 싶다.


내게 가장 그리운 폴은 연애하기 시작했을 때의 팔팔하고 눈부셨던 그 남자가 아니다. 뭔가에 집중하는 아름다운 남자였던 투병 말기의 폴, 이 책을 쓴 폴, 병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았던 그 남자가 그립다. p.258 루시 칼라니디의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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