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평점 :
일시품절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이라는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지만 제목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목으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표지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제목과 표지에 사로잡혀 이탈리아 문학계에서의 무수한 수상 경력과 유럽권에서의 베스트셀러 기록, 영화화 확정 등의 화려한 수식어들은 한참 지나서야 눈에 들어왔다.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혹과 그 속에서 피어난 우정과 사랑을 그려낸 이야기는 익숙한 콘텐츠지만 이탈리아 문학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기에 반가움, 기대감과 더불어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이란 말 그대로 음독의 가능성 때문에 히틀러의 음식을 미리 시식하는 10명의 여자들을 말한다. 우리의 역사에도 기미 상궁이라는 존재가 있었지만 언제든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는 불안의 감정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소설의 1부에서는 언제 독을 먹고 죽을지 모르는 시식단의 불안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또한 전쟁을 배경으로 남겨진 여자들에 대한 묘사와 시식단 내에서 일어나는 텃새, 시기와 질투, 우정, 연민의 감정을 세심하게 녹여냈는데 이런 소재와 감정들 역시 그동안 많이 접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다. 소설의 2부에서는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시부모님과 살면서 히틀러의 시식단으로 일하는 로자에게 어느 날 남편의 실종 소식이 들려오고 마침 실의에 빠진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치글러 중위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관계 묘사가 긴장감을 더해준다. 속도감이 붙으며 반전을 맞이하고 결말을 향해 가는 3부까지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어떤 기억이 퍼뜩 떠올라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레고어가 마지막 편지에 쓴 러시아 미신 이야기였다. 독일군에게도 그 미신이 적용되는 걸까? 그레고어는 자기 여자가 정절을 지키는 동안 군인은 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믿을 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레고어는 그것도 모르고 나를 믿는 바람에 죽어버렸다.

 그레고어는 나 때문에 죽은 거다. 심장박동이 더 느려졌다. 호흡이 멈추고 귀가 먹먹해지더니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심장이 멈춰버렸다. p.208-209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동안 익숙히 봐왔던 나치 수용소나 유대인의 이야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전쟁으로 징집된 남성 중심의 이야기로 소비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을 겪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 초점을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남편까지 실종된 여성의 비련에 맞추지도 않는다. 많은 소설, 영화들이 다뤘던 익숙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실제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15명의 여성 중 유일한 생존자인 마고 뵐크의 인터뷰를 토대로 쓰여진 소설로 이탈리아 주요 문학상을 휩쓸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화도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소설이 되고 영화화되는 과정 또한 한 편의 소설 같고 영화 같다. 로자의 복잡한 심경과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스크린을 통해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