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행방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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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밤의 행방』이라는 제목과 달리 너무나도 알록달록한 색감과 배경의 표지 디자인은 소설 속 분위기를 쉽게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만큼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표지의 색감만 보고선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점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많은 사람들의 에피소드라는 소개 글을 보고선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안보윤 작가가 안내해줄 미지의 세계는 무엇을 짐작해도 그 이상을 보여줄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빠르게 소설을 읽어나갔다.

 

사짜 점쟁이 누나가 귀신을 붙이려고 백일치성 드리러 간 사이 점집을 지키던 동생에게 죽음을 보는 사신 나뭇가지 '반'이 생기며 '천지선녀'집은 죽음을 잘 본다는 소문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신비한 나뭇가지 반을 손에 쥐면 반은 그 사람과 관련된 죽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반의 목소리를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주혁의 이야기가 초반엔 흥미롭게 전개되며 얇은 소설이 쉼 없이 즐겁게 술술 읽히기 시작하지만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무수한 슬픔을 품고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며 가족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대면하다 보면 안보윤 작가가 전하는 압박감에 억눌리게 된다. 안보윤 작가는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 사고들과 유가족들이 품고 있는 아픔과 슬픔을 세심하게 다루면서도 각각의 인물과 사건에 저마다의 색채감을 더해주는데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죽음'이라는 소재로 무겁고 어둡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표지의 알록달록한 색감처럼 저마다의 색채를 느끼게 한다. 촘촘하고 견고한 이야기의 짜임새는 말할 것도 없다.

 

작가의 말에서 안보윤 작가는 1999년 씨랜드 화재로 받은 상처를 끄집어내며 그와 비슷한 사건을 적어도 다섯 개는 댈 수 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밤의 행방』의 얇은 이야기 속에서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사고들이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먹먹하게 만들었다. 얇고 재밌는 책을 초반엔 쉽게 술술 읽어 냈지만 소설이 끝나고도 이어지는 여운에 감정이 심하게 동요되는 데에는 소설을 읽어가는 시기에 어린이 안전법으로 나라가 유난히 시끄러웠던것도 크게 한몫했다. 너무나도 끔찍한 사고와 인재가 반성과 각성 없이 반복되고 있고 각종 안전법들은 유가족의 투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마저도 정치적인 색을 입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목을 또 박아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회에 대한 환멸을 뉴스를 보며, 『밤의 행방』을 읽으며 더 진하게 느꼈다.

 

자음과모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새소설 시리즈>가 어떤 색을 가지고 이어나갈지 궁금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세 번째로 안보윤 작가가 등장하면서 앞으로의 기대감을 더욱 상승시켜 주었다. 제목과 반대되는 이미지의 표지의 수수께끼는 소설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오히려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왜 소설의 제목이 『밤의 행방』인 건지 수수께끼가 더 늘었다. 작가의 말을 읽고선 더 헷갈린다. 한국사에서 잊지 못할 사고들을 소재로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한국 소설들이 많다. 『밤의 행방』에서 다룬 씨랜드 화재, 밀양 요양원 화재 그리고 세월호 사건들을 떠올리며 동시에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인천 호프집 화재 등을 다룬 다른 작품들이 동시에 생각나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확실히 이전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작가들도 많다. 현실에서 받지 못하는 치유를 소설을 통해 받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또 마음의 빚을 진 소설가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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