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업 - 상 - 아름답고 사나운 칼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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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은 대륙의 스케일 답지 않게 한국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비교적 낮은 것이 사실이다. 유명한 영화의 원작 소설이 출간되고 노벨 수상 작가가 배출돼도 잠깐 주목을 받을 뿐 그 명성과 인기가 이어지거나 다른 작품으로까지 크게 확장되지는 못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문화 콘텐츠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유독 문학 작품만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결코 중국 문학이 영화나 다른 영역들에 비해 수준이 낮아서라거나 특별히 진입장벽이 높아서는 아닐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제왕업』을 읽어나갔다.

 

 "왜나하면 네게는 그보다 더 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고모의 눈빛은 물빛처럼 서늘했다. 

 "무엇이 더 중한 일인가요?"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으며 따졌다. "고모에게 중한 일이 꼭 제게도 중한 것은 아니에요!"

 고모에게 중한 것은 황후의 자리며 권세, 태자의 지위뿐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며, 자담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마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다를 수 있지만, 또 별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지. 그것은 지난날의 내게도, 또 오늘날의 내게도 그러하며 대대로 바뀐 적이 없다. 무엇이 가장 중하고, 또 무엇이 가장 가치 있을까?"

 고모는 내게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 서늘한 눈빛은 나를 꿰뚫고 지난날을 거슬러 올라가 머나먼 시절 어느 순간을 응시하는 것 같았다.

 문득 고모의 목소리가 잠겼다.

 "나도 무척 사랑한 사람이 있었단다. 한때 그는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또 슬픔이었지. 그 기쁨과 슬픔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 그것을 얻든 잃든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단다. 그러나 또 다른 얻음과 잃음은 나 혼자만의 기쁨과 슬픔보다 훨씬 깊고 중하며, 살아 있는 한 거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었지. 그것은 바로 가문의 영예와 책임이었어."

 가문의 영예와 책임.

 낯선 글자는 하나도 없었지만 마치 처음 듣는 말인 듯 생소했다. p.56-57

 

중국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화제의 작품 메이위저의 장편소설 『제왕업』은 웹소설 조회수 10억뷰, 누적 판매 500만 부의 베스트셀러이자 내년 방송될 장쯔이 주연 드라마 『강산고인(江山故人)』의 원작 소설이라는 타이틀만으로 대륙의 스케일에 대한 놀라움과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명성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의 대하드라마처럼 1,020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의 책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어떻게 펼쳐질까 상상하며 책을 읽어 나간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나오고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은 인물명들에 자주 멈칫하게 되지만 황실에서 귀하게 자란 왕현 앞에 펼쳐지는 광활하고 화려한 무대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권력 다툼의 스토리는 거침없이 이어진다.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등장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본심은 무엇인지를 가늠하며 나름의 반전을 맞이하면서 책장을 넘겨 가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모든 영웅들이 흠모하는 왕현의 매력에 독자들 역시 예외 없이 깊이 빠져들게 된다. 광활한 여정을 함께 한 것 같은데 아직 절반의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남은 이야기가 왕현의 여행과 같은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나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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