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코믹스 Volume 1
라이언 노스 지음, 셀리 페럴라인 외 그림, 서애경 옮김, 정한결 감수 / 작가정신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기력과 우울이라면 일가견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이렇게나 노잼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의 나는 무척이나 심각하다. 만사가 다 귀찮고 평소 좋아하던 관심분야의 일들도 시큰둥하다. 나만의 동굴 깊숙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언제까지고 혼자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싶은데 지난여름 꽤나 충실하게 유노윤호처럼 살았던 터라 벌려놓은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수습하기가 바쁘다. 이 상황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드는데 그 걱정이 노잼시기를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인지, 벌려놓은 일들을 수습하는 것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코믹스』를 받아 들고도 시큰둥했던 것은 책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상태의 문제였다.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핀과 제이크가 좋아하던 캐릭터도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여러 짤들을 본 기억은 있지만 이 친구들의 이름도 이번 기회 덕분에 알게 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는데 귀여운 캐릭터들만 보고선 책장이 술술 넘어가며 시간을 때우고 머리를 비우는데 좋을 것이라 단순히 생각했지만 당연히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고 봐야 할 그림과 대사들을 다 짚어보는데 생각했던 이상의 시간이 소비된 것은 물론이고 심오한 스토리에 반전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래서 이 만화는 어느 연령대를 겨냥하여 만든 이야기일까?를 책을 읽어가는 내내 생각했지만 두 권을 다 읽으며 무수한 탐험의 여정을 마치고도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도대체 이 만화는 뭐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을만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엉뚱함과 황당함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봐왔던 만화 세계와는 다른 것이다. 하지 말라는 짓은 더해서 일을 저지르고야 마는 주인공들의 활약상이라면 그리 낯설지가 않지만 재미와 감동으로 귀결되는 결말이 아닌 심오함의 여운을 느끼면서 내가 세상이 바뀐 걸 너무 모르고 사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예전엔 공주라 하면 아름다움을 무기로 왕자들의 보호를 받는 존재로만 소비됐었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공주들이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존재로 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영웅이 되는 변화들을 지켜보는 일이 기쁘다. "나는 남편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꼭 말해두고 싶어."라는 명대사를 코믹북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당황스러움과 시큰둥함으로 집어 들었는데 우 랜드에는 기대 이상의 반전 거리가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어드벤처 타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