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았다, 그치 -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이지은 지음, 이이영 그림 / 시드앤피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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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기다리며 사랑이 끝난 후 이별에 대한 단상을 간결하면서도 담백하게 담아낸 에세이를 마주했다. 이지은 작가의 글을 읽으며 함께 감정을 따라가다가 꼭 헤어진 옛 연인이 아니더라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무수히도 많았다. 과연 나는 사랑이나 설렘의 감정을 이끌어주는 글을 마주하면서도 이토록 많은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싶어 인생을 잘못 산 건 아닌지 자책감이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별에 대한 단상을 담담하게 꾹꾹 누른 감정들을 따라 읽어가는 것이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한때 달고 살았던 잡지 <페이퍼>가 생각났다. 황경신, 정유희 작가의 글에 사무쳐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있었는가 하면 마음이 끝도 없이 말랑말랑해지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동안 내 인생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 월간지가 휴간을 하다가 격월 잡지가 되고 계간지가 되어가는 동안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감성마저도 오래 잊고 살다가 이번 『참 좋았다, 그치』를 읽어가는 동안 그때의 감성을 다시 소환시켜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도 <페이퍼> 객원기자로 먼저 알았다. 그 시절의 나에게 정말 아름다웠던 잡지였다.

 

여전히 불안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더 철저하게 나 자신을 혼자만의 동굴로 내모는 것 같다. 더 이상 나에겐 사랑과 설렘의 감정에 대한 환상도 없고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 또한 없다고 적고 보니 마치 인생을 다 산 노인 같아 보여 쓴웃음이 난다. 그래서 사랑이나 설렘에 대한 단상을 마주하면 일단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곤 하는데 이별에 대한 단상은 담담하게 읽어가며 추억을 떠올릴 줄도 아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떠오르는 얼굴들도 무수히 많았지만 이별에 대한 애틋하면서도 담담한 감정들과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책, 음악, 영화들도 무수하게 떠올랐다.

 

노희경 작가는 그녀의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서 '첫사랑에게 바치는 20년 후의 편지'를 통해 "버려줘서 고맙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과거의 연인에게 참회한다. 필력은 죽어도 못 따라가지만 언제까지고 노희경 작가가 전하는 감성의 울림에 진하게 감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게 해줬던 글이었다. 10년도 더 지나 이지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고 위안을 얻었다. 책을 마주할 때의 감정에 따라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고 담담하게 따라 읽어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2019년 늦여름의 나는 담담하게 따라 읽으며 한동안 잊고 살았던 무수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했다고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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