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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84호 - 2019.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신경숙 작가의 4년 만의 복귀작이 발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출판계 소식을 출판사의 SNS를 통해 빠르게 접하는 편인데 빠르게 접하긴 했지만 출판사의 SNS가 아닌 뉴스를 통해 먼저 접했고(출판사에서 SNS를 통해 출간 소식을 전하면서도 신경숙 작가의 복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만나기도 전에 기사를 통해 신경숙 작가의 '작품을 발표하면'을 먼저 읽었다. 여름호가 출간되어 제일 먼저 찾아 읽은 작품 역시 신경숙 작가의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였지만 따로 서평을 쓰진 않았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은 작품들이 쌓이자 『창작과비평』 2019년 여름호는 신경숙의 복귀보단 천운영과 황인찬의 복귀작이 더 도드라짐을 느꼈다. 항상 그러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화려한 작가진과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과 여러 목소리를 심층 있게 다루면서 문학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발간 전부터 논란을 먼저 접하고 섭섭함과 실망을 느꼈던 감정들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변해있었다. 그러길래 앞서지 말았어야 했다.
김성중 작가의 「정상인」은 과거 운동권 끝물에 함께 마르크스를 공부했던 선후배가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이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월이 흐르며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후배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아가는 선배 사이의 뚜렷한 경계와 긴장을 잘 묘사한 작품이었으며 인상 깊은 문장들도 많았다.
신경숙 작가의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는 허수경 시인 추모작이다. 친구의 병환 소식을 접하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선뜻 유럽으로 향하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에게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길 꺼려 하는 친구의 모습에서 신경숙 작가와 허수경 시인의 우정을 볼 수 있다. 무수한 세월 쌓아온 두 사람의 우정을 익히 알기에 이별을 직감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뿐인 마지막이 먹먹하게 읽힌다.
오선영 작가의 「우리들의 낙원」은 인간의 속물근성을 어린 두 소녀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호 가장 좋았던 문장을 두고 김성중 작가의 「정상인」과 나란히 오래 고심했던 작품이다.
임국영 작가의 「헤드라이너」는 수록된 작품 중 가장 골때리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들보다 앞으로 보여줄 작품이 훨씬 많은 작가이지만 몇몇 작품들로 작가의 패턴이 보였다. 박민규 작가와 이기호 작가가 동시에 떠오르는 발견이었다.
천운영 작가의 「금연캠프」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금단현상과는 대비되는 맛깔난 문장들이 쉼 없이 펼쳐진다. 인물들의 과거나 이후의 이야기들로 소설이 더 확장되어도 좋을 것 같다. 난 과거의 이야기에 한 표.
이기호 작가의 장편연재가 시작됐다. 아일랜드 태생으로 광주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일했던 「싸이먼 그레이」 (1981~2017)의 일대기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전개하여 이기호 특유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남은 연재를 통해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작품임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기대감이 커진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화려한 작가진으로 가득 채웠다. 다양한 연령대와 작품세계를 지닌 12명의 시인들의 작품들이 시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리스트만 봐도 든든할 정도다. 정호승 시인의 「개똥」과 「새똥」은 가볍게 읽히지만 오래 되짚어보는 작품이었다.
지난 호에 이어 3.1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이번호에도 이어졌다. 3,1운동과 혁명에 대한 두 방향의 논리(백낙청 「3.1과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와 외국인의 시선으로 돌아보는 우리의 과거사(브루스 커밍스 「독특한 식민지, 한국」)가 흥미롭게 읽힌다.
이외에도 문학사와 페미니즘에 대한 논단, 패스트트랙, 방위비 분담금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에 대한 목소리를 문학을 통해 품격있게 들려준다. 촌평을 통해서도 작품의 주제와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에 맞는 사회 현상에 관한 이야기가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다. 김민섭 작가가 윤지관 작가의 『위기의 대학을 넘어서』를 다룬 것은 그야말로 환상의 캐스팅이었다. 이향규 교수의 런던한겨례학교 자원봉사 수기도 흥미진진했는데 작년 봄 창비 주간 논평에 실린 김중미 작가의 「만남은 가까이에 있다 : 이향규 『후아유』」와 함께 읽으면서 이주민에 대해 진지한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온라인클럽 창작과비평 활동을 하면서 전자 구독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과 함께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큰 메리트이다. 1년 정기구독의 경우 4권의 전자책을 90일 동안 대여할 수 있는데 일부러 아끼느라 아직 이용은 못했다. 좋은 책들을 전투적으로 출간하는 출판사답게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읽어본 작품들도 많지만 욕심나는 작품들 역시 넘치게 많아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다. 지방에 살아 온라인 클럽 활동을 했지만 오프라인 클럽의 합평회 풍경도 궁금하다. 문학 계간지를 다루면서 사회 전반의 현상과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함께 다루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친절한 창비만의 방식에 빠져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