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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SNS를 하다가 공감되는 글을 봤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처럼 당당하고 멋있게 살 줄 알았지만 현실은 <인간극장>이라는 것이었다. 분명 내가 상상해왔던 미래의 내 모습이 지금의 이 꼬라지는 절대 아니었다.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 그러한 업적들을 보상받으며 여유롭고 호화롭게 휴식을 즐기고 거기엔 모두가 부러워하고 샘내는 멋있는 남자친구가 나만 바라보며 옆에 있어야 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화려한 생활만큼이나 내면도 성숙하고 단단한 어른이 나이만 먹으면 거저 되는 줄 알았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런 어리석은 상상을 쉽게 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형벌이라도 받는 듯이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김혜남(정신분석 전문의), 박종석(정신의학 전문의)의 심리학 에세이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는 우울과 불안에 잠식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짊어진 다양한 우울 증상과 원인을 짚어보며 극복해 나갈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당연히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절대 그러지 못하고 있고 제시되는 21개의 증상들이 모두 내면에 어느 정도 잠재되어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꼼꼼하게 살펴보게 된다. 김혜남 박사의 글은 Rosso 박종석 박사의 글은 Blue로 구분되어 교차되는 두 작가의 글이 마치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가 떠오르게 한다.
뚝심 있게 나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이 빨리 달리든 열심히 달리든 그것은 그들의 속도다. 그렇게 열심히 뛰다 어딘가에서 고꾸라진다고 해서 내가 일으켜줄 것도 아니고, 그들의 페이스에 휘말린 내가 지쳐 쓰러진다고 해서 누구 하나 나를 일으켜 세워주지 않는다. 내 삶은 내 것이니만큼 나의 속도를 즐겨야 한다. 힘들면 쉬어도 되고, 덜 노력하고 덜 열심히 살아도 된다. p.77 박종석 - 번아웃 증후군
책이든, 영화든, 노래든 나의 취향은 어둡고 우울한 것들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베스트셀러, 1000만 영화들과 맞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다고 까다로운 건 절대 아니고 조금 별난 편이다. 우울하고 평소에 비해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서 떨쳐내려 유난을 떠는 편이기보다는 바닥을 치는 편이라 작가들이 건네는 치유와 처방에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의 독서만이 주는 공감과 위로는 확실히 받았다.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이 되지 못해도 어떤가,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성찰로 자신의 <인간극장>을 건강하고 성실하게 완주해야 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른이 되어 안 괜찮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