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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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처럼 행동하면 상대도 먹잇감답게 행동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습지 소녀 카야는 그렇지 못하다. 술을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빠를 견디지 못하고 엄마, 언니, 오빠들이 차례로 집을 나가더니 아빠마저 집을 나가선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학교는 딱 하루 나가본 게 전부이고 마을 사람들은 마치 늑대소년 보듯하며 그녀를 '마시 걸'이라고 부른다. 보금자리 습지와 주변 동물, 식물, 곤충들만이 카야의 친구이고 가족이고 스승이다. 외로운 소녀 카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혼자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자연을 이치를 배워가며 숙녀로 성장해간다.  

그런 카야에게 습지는 그녀의 어머니가 되었고 정신적 부모가 되어주는 흑인 부부 점핑 아저씨와 메이블 아줌마가 있고 테이트에게 글을 배우며 첫사랑이 시작된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테이트는 카야를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다시 외톨이가 된 카야의 습지에 체이스 앤드루스가 나타나 카야의 마음을 다시 뒤흔든다. 몇 년 후 늪에서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가 발견이 되고 카야는 살인사건 용의자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된다.



 

 한참 후에 카야가 말했다. "이제 원하는 게 뭐야, 테이트?"

 "어떤 식으로든, 네가, 나를 용서해주는 거." 테이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기다렸다.

 카야는 자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카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p.247

 

"아니, 갈매기랑 왜가리랑 판잣집을 떠날 수는 없어. 나한테 가족은 습지뿐인걸" 

평생을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생태학자로 살다 일흔이 다 된 나이에 뉴욕타임즈 37주 연속 베스트셀러, 아마존 23주 연속 종합 1위, 2019 가장 많이 팔린 책, 리즈 위더스푼 북클럽 <헬로 선샤인 북클럽> 도서 선정, 영화화 확정 등 매일 새로운 흥행 기록을 달성해가고 있는 화제의 작품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델리아 오언스는 습지 소녀 카야의 일생을 1부 '습지'를 통해 성장소설, 로맨스 소설을 보여주고 2부 '늪'을 통해 살인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보여주어 위태로운 소녀의 불안정한 감수성과 체이스 앤드루스의 살인사건으로 미스터리 서사를 이끌어가는 저력을 보여준다. 카야의 성장과 체이스의 살인사건이 교차되는 이야기와 습지와 늪을 대비시켜 소설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부분이 흥미롭게 펼쳐지며 쉼 없이 독자들을 자극한다.

1952년부터 시작되는 소설의 당시 시대상은 물론이고 습지와 늪의 거대한 자연이 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재연하고 세밀한 심리묘사와 자신과 지구 사이에 아무런 장막이 없는 카야를 비롯하여 입체적인 등장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고는 재미와 긴장감을 450페이지가 넘도록 쉬지 않고 전해준다. 습지의 동, 식물을 통해 자연이 전하는 지혜와 메시지를 전하는 부분은 가히 환상적이다. 영화화가 확정이라는데 과연 카야의 눈부신 성장과 습지의 아름다움이 스크린에서는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카야는 논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구름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졌다. 곤충 암컷은 짝짓기 상대인 수컷을 잡아먹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포유류 어미는 새끼를 버리며, 많은 수컷이 경쟁자보다 더 잘 파정하기 위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방법을 고안해낸다. 생명의 시계가 똑딱똑딱 돌아가는 한, 천박하건 무례하건 아무 상관없다. 카야는 이것이 자연의 어두운 면이 아니라 그저 모든 위험요소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창의적인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인간이라면 물론 그보다는 훌륭하게 행동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p.229

 

이곳보다 더 절실하게 나침반이 필요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제목부터 한 편의 시 같더니 카야의 상황에 대비되어 등장하는 시들과 자연이 전하는 신비가 소설의 재미와 감동을 배로 전해준다. 카야의 어린 시절과 흑인 부부 점핑 아저씨와 메이블 아줌마의 이야기에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두 작품의 매력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확실히 다르다. 습지의 동, 식물의 행동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은유되었기에 중요한 사건의 마지막을 끝까지 확인사살 시켜준 것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지만 소설이 전하는 감동과 매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카야는 습지에 물이 어제의 이야기를 삼켜버리는 과정을 여러 번 보았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소녀 카야와 카야의 이야기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절대 잊지 못할,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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