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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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제발트를 알게 해준 건 <창비 라디오 책다방> 시즌 1을 통해서였다. 배수아 작가님이 출연하셔서 소설가로서, 번역가로서의 이야기를 내내 경쾌하게 해주면서 독일에서 생활하며 제발트를 발견했던 기쁨을 즐겁게 들려주셨고 바로 다음 방송에서 제발트의 작품을 다루며 제발트와 그의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높여주어 나도 곧 제발디언이 되리라 다짐했었다. 그때가 무려 6년 전이다. 배수아 소설가와 황정은 소설가의 케미가 너무나도 잘 맞아 팟캐스트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음에도 제발트와의 첫 만남까지 너무나도 긴 시간이 걸렸다. 언제나 내가 읽는 속도보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넘치게 많았고 어쩐지 배수아 소설가와 황정은 소설가가 동시에 환호하는 작가의 작품은 장벽이 높을 거란 생각에 항상 우선순위로 미뤄뒀던 탓이라고 변명을 해보지만 그래도 6년은 너무 심했다. 

 

제발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지만 쉽게 읽힐 작품은 아닌 것 같아 보이고 엄청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숭배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조금도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그의 작품 중 어느 작품으로 제발트를 처음 만나야 하는가도 고민거리였다. 그런 고민을 한방에 해소시켜준 것은 "작가에게 커다란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제발트 소설"이라는 『이민자들』의 소개 글이었다. 제발트를 처음 만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인 작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게 해준 한 줄이었다. 

 

『이민자들』은 4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으로 「헨리 쎌윈 박사」, 「파울 베라이터」,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막스 페르버」가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네 사람의 이민자들의 연작 단편 형식의 이야기이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를 제외하면 모두 유대인들이며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에도 유대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고향을 상실하고 인생의 불운한 시기를 겪었던 이들의 죽음 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4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버거웠던 시대와 녹록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들을 증명한다. 특유의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가 내내 이어지면서 네 편의 단편이 하나의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그리 가까웠던 관계도 아니었던 인물들(집주인, 선생님, 먼 친척, 나이 차이를 초월한 친구)의 과거 발자취를 따라가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 인물과 상황을 이해하며 이야기하는 과정이 펼쳐지는 그의 문장들이 마치 웅장한 건축물처럼 견고하게 느껴진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작가의 소설 세계를 한 권의 책을 읽고 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작가의 색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제발트를 처음 읽는데 더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수아 작가가 출연한 <창비 라디오 책다방>에서 배수아 작가와 황정은 작가의 케미가 빛나 더 좋았던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다. 자기 색이 너무 강해 좀처럼 '케미'라는 단어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두 소설가가 방송에서 언급되는 작품마다 격하게 공감하고 상대의 공감을 크게 반가워하는데 나도 같이 공감하고 반가워하고 싶었다. 나도 제발디언이 되고 싶었다. 너무나도 몸을 사렸던 탓에 제발트를 읽는데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내가 『이민자들』을 읽고 느낀 감정들이 배수아 작가가, 황정은 작가가 제발트에 열광하는 그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상보다 빨리 읽혔고 예상대로 좋았지만 우려대로 작가들이 열광하는 그 감정까지는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제발트의 작품들을 찾아 읽을 것이고 언젠가 『이민자들』도 다시 읽어 볼 것이다. 남은 제발트의 작품이 몇 권 없어서 안타깝지만 여전히 제발트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있어 기쁘고 개정판을 내주는 출판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모두 죽고싶어도(?) 제발디언은 되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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