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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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맛집 창비에서 눈가리고 책읽는당 3기를 모집했다. 3년 전 눈가리고 책읽는당 2기에 참여하여 가제본의 도서를 받고 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와 편견 없이 오로지 나만의 시각으로 한 권의 책을 읽고 마치 셜록처럼 작가에 대해 추리하며 서평을 작성했던 일을 즐겁게 추억하고 있는 나에게 지나칠 수 없는 이벤트였다. 당시 서평을 작성하고 난 이후 책의 출간이 늦어져 책의 정체도 늦게 발표되어 숨넘어갈 뻔했는데 평소 즐겨보던 블로거분이 비밀댓글로 살며시 알려주고 가셔서 책을 혼자 읽은 것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읽은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아 정말 특별했던 경험으로 남아있었다. 

기분 좋게 눈가리고 책읽는당 3기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셜록도 정주행하면서(읭??) 가제본 도서를 받아 즐겁게 독서를 해나가기 시작했는데 서평 등록일이 정해지지 않아 너무 여유를 가지며 책을 읽어나갔고 그것이 중대한 실수가 돼버렸다. 가제본 표지에 명시된 단서 #새인간 #작은날개 #영어덜트소설을 봐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다가 '익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아가미』의 구명모 작가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직 소설 초반이고 다른 가능성들이 무궁무진했다. 주인공 루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소녀였고 SF 요소들이 등장한다면 듀나작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며 책을 읽어나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책의 정체가 발표된 것이다. 눈가리고 책읽는당 3기 도서 발표 안 본 눈 삽니다. 안 본 뇌 삽니다를 외치며 책을 빠르게 읽지 못한 나를 향한 자책은 금방 구병모 작가의 신작 『버드 스트라이크』에 대한 반가움과 환호로 바뀌었다.

 

전 시행과 그의 비서 사이의 아이로 태어나 외조부의 죽음 후 청사에 입성했지만 가족과 청사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10대 소녀 루와 보통의 익인에 비해 큰 키와 왜소한 날개로 익인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바오는 각자가 속한 세계에서 자신들의 존재만으로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생명들이다. 어느 날 청사에 익인들의 습격이 발생하고 작은 날개로 무리와 함께 도망치지 못한 바오는 청사에 갇히지만 루를 인질로 삼아 탈출에 성공하여 익인사회로 돌아온다. 

구병모 작가는 루와 바오를 통해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거부당한 아이들의 내면의 상처를 보여주고 도시인과 익인 사이의 갈등과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의 전작 『위저드 베이커리』와 『아가미』에서 보여줬던 구병모 특유의 판타지와 몽환적인 이미지가 보이는가 하면 『파과』에서 보여줬던 입체적이고 강렬한 캐릭터와 흡인력 있는 서사가 보이기도 한다. 소설 속 익인들이 생활하는 고원지대에는 인체에 마취 작용과 흥분을 가져다주는 미과라는 열매가 있는데 『버드 스트라이크』 자체가 구병모 작가가 주는 환상에 사로잡히는 미과 같은 소설이었다. 

환상과 흥분에도 불구하고 구병모 작가 특유의 어두움 또한 『버드 스트라이크』에서도 빠지지 않지만 익인의 날개에는 치유의 힘이 있듯이 구병모 작가의 문장에도 치유의 힘이 있어 마치 큰 날개로 독자들을 감싸 안아주는 것 같다. 지장과 루의 대면에서 지장은 큰 어른답게 "아주 잠깐이라도, 그 인연을 귀하게 여기세요."라고 말하는데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 이어온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과의 인연이 정말 귀하게 여겨진다.

 

지난 3월 27일은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가 출간된 지 10주년 되는 날이었다. 지난 10년간 구병모 작가가 성실하게 발표한 작품들의 성과도 놀랍고 엄청나게 넓어진 스펙트럼도 놀랍다. 작년 여름에 발표되어 너무나 현실적이라 짜증이 난다던 원성(?)을 들었던 『네 이웃의 식탁』과 올봄에 발표된 익인 소년과 인간 소녀를 통해 성장기를 보여주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같은 작가가 일 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발표한 작품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구병모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구병모 작가의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작품들로 채워질지 기대가 크다. 구병모 작가를 성실히 오래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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