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박생강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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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이태원에 위치한 에어비앤비에서 묵고 이유 모를 이별을 하게 된다. 안 그래도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에어비앤비가 더 마음에 안 든다. 남자친구로서, 재무부서에서 일하는 회사원으로서,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가족의 큰아들로서 연애도, 일도, 가정도 피곤하기만 한 서른다섯의 영훈. 이태원의 에어비앤비를 다시 찾아 머무는 일이 몇 번 생기면서 그곳의 청소부이자 호스트인 운과 친밀해지고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짤막한 책의 줄거리만 봐도 기대감이 컸는데 막상 책의 실물을 마주하자 의외라는 감정이 여기저기서 생겨나 당혹스럽게 했다.
소설이 이렇게나 짧을 거라는 건 미쳐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가독성도 좋아 정말 빨리 읽혔다. 거대한 서사가 없음에도 흥미롭게 읽혀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을수록 아쉬움이 커져가는데 빠르게 읽히는 사이에도 다시 읽어보게 되는 문장들이 곳곳에서 한숨 쉬어가게 해줬다. 
책의 제목과 줄거리만 봐도 젊은 작가의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일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지만 영훈이 영훈으로 읽히고 운이 운으로 읽히는 건 짐작하지 못했던 대목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색이 녹아들어 등장인물들이 작가로 읽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에어비앤비의 청소부』의 경우 단 한순간도 박생강 작가가 읽히지 않았다. 작가가 실제 이태원의 에어비앤비에서의 룸 세팅 및 청소 프리랜서 경험을 했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작가의 경험을 녹여내고도 작가의 색을 전혀 못 느꼈음을 뒤는 게 깨달았다. 허를 찔린 느낌이 들었지만 범상치 않은 작가를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책의 표지를 봤음에도 실물을 영접하고 책을 읽어갈수록 표지의 쨍한 컬러감이 이 책과 어울리지 않았던 건 소설이 빨리 끝난다는 아쉬움에 이은 이 책의 두 번째 아쉬움이었다. 영훈과 운은 선명한 캐릭터들이 아니고 소설 또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스토리가 아니다. 정처 없이 부유하는 불완전한 존재들의 불완전한 이야기를 이태원의 에어비앤비라는 장소에 녹여낸 것이 『에어비앤비의 청소부』만의 확실한 매력인데 그 매력과 상반되는 표지가 아니었나 싶다. 많은 독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책의 띠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만큼은 띠지의 홍보문구가 책을 살렸다 싶을 정도로 표지가 하지 못한 역할을 해낸 것 같았다. 미술에 대한 조예라는 게 애초에 있지도 않았고 그런 센스가 1도 없는 사람이지만 소설이 좋았던 만큼 아쉬움도 컸던 부분이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없었더라면 아쉬움이란 감정도 없이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갔을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 이 책의 독자가 되어주시겠어요?

 

 

"좋습니다. 어차피 무슨 일 있으면……."
대놓고 최악의 후기를 만방에 널리 퍼뜨릴 작정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신 다음에 또 야근하면 싼 가격에 예약하는 걸로 하죠."
"좋아요, 평일 오만 원인데, 삼만 원으로 깎아드릴게요. 대신 주말은 안 돼요. 그날은 깎을 수가 없어요. 대목 장사라."
내가 침실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거의 잠으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빈방 청소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그리고 감사한 건 나이도 많으신데...... 존댓말 써주시고, 저한테."
'그건 네가 전과자라 무서워서 그런 거야. 내가 반말하면 욱해서, 뭔 짓 할까봐.' p.52-53


좋은 소설을 읽었으니 작가에게,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특별한 메세지를 보내고 싶다. 정말 좋은 소설이야요. 대박 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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