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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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지역 유명 정치인과 이제 갓 스무 살인 정치 지망생 여자 인턴과의 스캔들이 터진다. 스캔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관심은 당연히 뜨겁다. 그리고 또 당연히 비난의 화살은 오직 여자 인턴에게만 향한다.
책에 관한 짤막한 줄거리만 보면 이 소설의 배경이 대한민국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현재 우리에겐 이 짧은 줄거리 소개에 절로 떠오르는 뉴스들이 있고 인물들이 있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대한민국은 그런 사건이 일어나서 여자만 비난과 상처를 받는데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라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소설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미투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거창하게 일어났다가 가십거리가 되어버리기 이전 이미 원고가 완성된 이야기라고 한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을 현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로 접하며 살다 보니 소설의 스토리 구성이 오히려 밋밋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소설의 색채를 더해주고 숨을 불어넣는다. 자신이 아버지뻘인 하원의원과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도무지 헤어지지 못하는 아비바, 자신의 딸과 에런을 어떡해서든 떨어뜨려야 하는 일이 사명이 되어버린 레이철, 평생을 정치인인 남편의 그림자에 가려 살아야 했던 엠베스, 엄마의 과거를 알아버리고 엄마의 시장 출마를 결사반대하는 루비와 딸의 반대에도 시장 출마를 강행하며 자신이 새롭게 건립한 새 인생이 다시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더라도 각오가 되어있는 제인 등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이유와 사정으로 상대와 대립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인생을 바라보게 된다. 거기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인들이 등장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영화에서 많이 봐와서 우리에겐 남 같지 않고(?) 익숙한 남자 캐릭터들까지 소설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언제부터인가 출간되는 책들에서, SNS에서 거론되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페미니즘에 관한 설전들이 성숙하고 건강해졌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불과 1년도 크게 지나지 않았지만 그 견해는 폐기되어버렸다. 내가 생각이 너무 짧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은 각자의 견해에서 존중되어야 할 것들보다 무시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에 대한 극단적인 입장들에 대해 우리 사회의 목소리와 그들의 태도는 미개하기까지 하여 아직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어떠한 입장에서든 잘못된 영향을 받을까 봐 페미니즘에 관한 논란과 저급한 설전들에 관해서는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하여 차단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많이 된다.

얼마 전 TV 프로에서 출연자들이 수학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힐베르트의 무한호텔을 예시로 들어 우리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꼬집었었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이 이 책이었던 덕분에 절로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 생각이 이어졌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사상이 아니라는 걸 재미있게 가르쳐줄 교육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거기엔 많은 학자, 작가, 운동가 등 많은 지식인들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개브리얼 제빈 역시 좋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아니 이미 해주고 있다. 그녀는 페미니즘이 미래라는 걸 힙합에 빗대어 표현할 줄 아는 영리한 작가다.

개브리얼 제빈이 앞으로도 이러한 소설들을 많이 발표했으면 좋겠다. 이런 귀한 능력을 가지고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건 재능 낭비이자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부디 다작 작가가 되어 그녀의 작품들을 읽은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렸으면 좋겠다. 부디 이 바램이 2세기쯤 앞서가는 발상은 아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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