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숨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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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되어 부모가 만들어낸 제인으로 완벽하게 다시 태어난 제인, 그녀의 목표는 오직 최고의 발레리나로서 다시 전성기 시절을 구가하고 싶은 것뿐이다. 사춘기 딸 레나는 그녀의 헬퍼 크리스티나를 닮아가며 애초에 그녀에겐 없었던 엄마로서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고 자신을 다시 전성기 시절로 되돌려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안무가 텐은 그녀의 약점인 과거를 들춰내며 그녀의 숨통을 조여온다.

범상치 않은 제목만으로도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나름의 각오를 하고 읽어나갔던 박영 작가의 『불온한 숨』은 흡인력있게 빠른 속도로 읽히면서도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이제 내리막길밖에 갈 곳 없는 제인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그녀와 그녀에 딸 레나의 틀어진 관계, 그녀를 다시 정상의 자리로 올려 줄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녀를 파멸시키려는 미스터리한 렌의 정체에 관한 궁금증까지 짧은 소설 속에 이 모든 것들을 녹여냈다. 아직 두 권의 책을 발표한 소설가라지만 왜 박영작가를 이제야 알게 된 건지 문학에 대한 나름의 애정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문학에 대해서 뭔가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사계절 내내 무더운 싱가폴의 배경과 위태롭게 현재를 버티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균형이 조화롭다. 모두가 파멸의 길에 들어서서 위태롭기만 한데 균형이 조화롭다니 무슨 아이러니인가 싶지만 박영작가의 세심함과 영리함이 단연 돋보인다. 문장들을 읽어가는 내내 박영작가가 인생의 경험이 풍부해 들을 이야기도, 배울 점도 많은 선배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실은 내 또래라는 점이 놀랍다. 한국 소설가에 대한, 한국 문학에 대한 발견을 뒤늦게 하고 기뻐하는 중이다. 예전만큼 많은 독서를 하지 못해 읽어야 할 작가들이 많이 밀려있지만 빠져있는 또래 소설가들이 많아 행복한 요즘이다.

소설은 끝났지만 등장인물들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상처를 받고 타인에게 상처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인물들까지도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상처는 회복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감정 소모로 유난히 힘든 시기에 이 책을 읽어가며 빠져들어 썼는데 내 안의 상처가 없을 때 철저히 제3자가 되어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 그렇게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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