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을 만난 세계 -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정창조 외 지음, 비마이너 기획 / 오월의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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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김도현 |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그리고 박기연과 우동민. 그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한 번씩 불러본다. 내겐 익숙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시민들에게는 아마도 대부분 낯설 이름들. 지난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날’, 이들의 삶과 투쟁과 죽음에 대한 곡진한 기록을 담은 책 <유언을 만난 세계: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오월의봄)가 출간되었다.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자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던 1996년, 캠퍼스 곳곳에는 최정환과 이덕인을 살해한 김영삼 정권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그해 겨울 에바다복지회의 비리와 인권유린 사태가 세상에 알려졌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활동을 하며 ‘장판(장애인운동판)의 전태일’과도 같았던 김순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2001년 대학 졸업과 함께 노들장애인야학 사무국장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한 나는 정태수의 집에 찾아가 소주를 얻어 마셨고, 명동성당 앞 노숙농성장에서 최옥란을 만났으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박흥수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망자의 체취와 함께 며칠을 머물기도 했다. 박기연과 우동민은 장애인 이동권 확보와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투쟁 현장에서 마주치곤 했던 나의 동지들이었다.

본격적인 장애인운동 활동가로서의 삶을 결의했던 20년 전, 나는 이 운동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운동 주체들이 겪어온 환경의 열악함과 고단함 때문이었을까. 기록된 장애인운동의 역사는 너무나 단편적이었고, 내가 접할 수 있던 텍스트라곤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시절 작성된 A4 여덟 쪽 남짓의 약사가 전부였다. 그런 아쉬움과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2007년 <차별에 저항하라: 한국의 장애인운동 20년, 1987~2006>을 쓰게 되었고, 그 책에는 박기연과 우동민에 앞서 간 여섯 명 열사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여러 한계들로 인해 그들의 투쟁과 죽음에 대한 기본적 사실만을 나열했을 뿐, 열사들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유언을 만난 세계>의 성취는 놀랍고도 소중하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6번 테제에서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어떤 위험의 순간에 번득이는 어떤 기억을 제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진실은 사실의 단순한 퍼즐 맞추기, 혹은 사실의 합이 아닌 것이다. 기록되어 있고 전해들을 수 있는 ‘사실’의 한계 속에서도, 이 책의 필자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실’을 담은 여덟 명 열사의 삶의 이야기를 기어코 구성해냈다.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희구하며 한 시대를 뜨겁게 살다 간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또한 개인사를 넘어선 장애의 사회사가 담겨 있다. 그 작업은 이 책의 부제처럼 ‘장애해방열사’들이 ‘죽어서도 여기 머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또 다른 투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부디 많은 이들이 함께 읽어 주시길. 열사들의 투쟁, 그리고 그들의 삶을 엮어낸 필자들의 분투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통해 완성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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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된 정의 - 양승태 사법부가 바꾼 인생들 셜록 2
이명선.박상규.박성철 지음 / 후마니타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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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가기 전, 꼭 읽어야 할 책 중 하나.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저자들의 노고에도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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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 노들장애인야학 스무해이야기
홍은전 지음 / 까치수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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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것이다

 

 

 

 

김도현|노들장애인야학 장기 휴직 교사

 

 

 

저자 H로부터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써달라고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 몇 가지 이유로 인해 나는 조금 망설였다. 우선은 나 스스로가 노들야학과 무관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노들장애인야학 스무 해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그 ‘책’을 (객관적인 거리를 갖고) ‘비평’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H로부터 건네받은 그 책을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아 단숨에 다 읽어 내려간 난 후, 어쩌나, 나는 좀 더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돈이나 힘 따위가 아니라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아름다운 문장으로 엮어 승화시켜낸 그 책에 대해 무언가 말을 더 보탤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H는 “수백 명의 삶이 딸려 올라오는 거대한 작업을 감히 겁도 없이 시작했다는 사실에” 자주 식은땀이 났겠지만, 나는 그러한 작업의 결정체에 무슨 말을 더 얹을 수 있을까 막막해서 식은땀이 났다.

 

그러니까 H가 “‘노들야학을 한다’는 일이 일종의 ‘몸으로 말해요’이자, ‘빨강이란 낱말 없이 빨강의 속성을 설명하기’와 같은 게임”이라고 말했듯이, 나 또한 H의 글 속에 엮여 들어가 있는 그 아름다움을 다시 설명하고 재현할 적절한 언어와 표현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평이라는 형식을 빌려 전혀 서평답지 않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꼭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무척이나 간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들판 위의 학교, 허허벌판에 홀로

 

노들장애인야학, ‘밤에 공부를 한다’는 의미에서의 ‘야학(夜學)’이 아닌 ‘민중이 서 있는 들판 위의 학교’라는 의미에서 ‘야학(野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곳. 그 작은 학교는 1993년 8월 아차산 자락에 위치한 정립회관의 한 귀퉁이에서 문을 연다.

 

198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대중적 장애인운동이 태동하던 시기, 그 운동을 가장 밑바닥에서 이끌었던 일군의 장애인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뭉쳤고, 장애인 대중의 조직화를 위해 몇몇 대학생들과 의기투합을 하여 노들야학을 준비한다. 그리고 노들야학이 개교를 하던 즈음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가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약칭 전장협)와 통합이 되면서, 1997년부터는 노들야학도 전장협의 부설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협이 사실상 현장투쟁의 노선을 포기하고 1998년 말 한국장애인연맹(DPI)과 통합을 하자, 노들야학은 아무런 끈도 뒷배도 없이 그냥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지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 책의 1부 ‘1교시: 배움’은 그렇게 노들야학이 만들어져 자치적인 공동체로서 성장해가며 홀로서기를 하는 분투의 과정을 담고 있다.

  

  

 

투쟁하고 공부하는 공동체(共動體)

 

어쩌면 그러한 갈라섬 자체가 무모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던 노들야학은 이후 더 무모해 보이는 길을 개척해 간다. 2001년부터 본격화된 이동권 투쟁을 선봉에서 이끌었고, 이후 들불처럼 퍼져 나간 한국사회 장애인운동의 현장투쟁을 가장 기층에서 뒷받침해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만들어 내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활동보조서비스의 제도화를 이루어냈던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그 격렬했던 투쟁 한가운데에 노들야학이 있었다. 노들야학은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자’라는 자신의 교훈(校訓) 그대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밑불과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으로의 일방적인 내달림만 있었다면 노들야학은 결코 지금과 같은 공동체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노들야학은 잘 의식화되고 결의에 찬 ‘선수’들이 모이는 운동조직이 결코 아니었다. 대중공간이었다. 40여명의 학생들과 20여명의 교사들은 그 숫자들만큼 다른 삶의 역사와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H가 그렇듯 나 역시 노들의 희망차고 밝은 모습보다는 “어둡고 절망적인 얼굴을 더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양 극단의 값을 도려내고 (평균이 가져다주는) 안정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들판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함께’ 했다. 그 함께-함(共-動)의 과정 속에서 노들야학은 “교육과 투쟁을 삶에서 분리시켜내지” 않을 수 있었으며, “혼란스러움과 변화무쌍함”을 오히려 에너지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의 제2부 ‘2교시: 투쟁’은 그러한 처절한 투쟁과 지난한 소통과 가슴 찡한 함께-함의 과정을 “교실의 온도와 습도, 냄새와 소란스러움 같은 일상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그려낸다. 노들야학은 통 큰 단결을 해서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에서의 공동체(共同體)가 아니라, 그렇게 꾸역꾸역 함께-함의 과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공동체(共動體)였던 것이다.

 

 

일상의 삶과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

 

그러나 세상의 모순과 타협하지 않고 불화하는 존재에게는 언제나 시련이 닥쳐오는 법. 자신이 무상으로 터를 잡고 있던 정립회관의 비리조차 눈 감지 않고 날카롭게 비판했던 노들야학은 결국 그 저항에 대한 대가로 14년간의 아차산 시대를 마감하고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어떻게 보면 주제 파악도 못하고 무모한 투쟁을 벌인 덕분에 꼼짝없이 쫓겨나는 형국이었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으므로 두렵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지만 힘을 낼 수 있었다.

 

2008년 1월 2일부터 마로니에공원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이어간 지 80여 일, 노들야학은 기어코 대학로 한복판에 100평짜리 공간을 교육청으로부터 쟁취해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낸다. 홈리스행동의 주말 배움터를 위해 공간을 나누고, 연극의 메카 대학로의 기운의 흡수하며 ‘장애인극단 판’을 설립하고,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을 탈출한 8명의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마로니에공원에서 탈시설을 위한 노숙농성을 벌이고, 노들섬의 텃밭에 노들야학만의 텃밭을 일구며. 2008년부터 전개되었던 삶과 분리되지 않은 교육, 투쟁과 분리되지 않은 삶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이 책의 3부 ‘3교시: 삶’을 이룬다.

 

이렇듯 1부에서 3부까지가 비교적 연대기적 순서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노들야학의 역사를 풀어낸다면, 4부 ‘4교시: 다시, 일상’은 지난 20여년의 기간 중 13년을 넘게 노들야학과 함께 했던 H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에세이들로 엮여져 있다. 이 글들은 『한겨레21』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코너에도 연재된 바 있으니, 인터넷에서라도 꼭 한 번 찾아 읽어보기길 진정 강추한다(‘마이너리티 리포트+홍은전’으로 검색하시면 된다). 앞의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4부의 글들은 저자 H의 섬세함과 인간다움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긴 시간의 함께-함이 없었다면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나는 글이라는 것을 읽으며 울컥, 울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과의 만남을 통해 당신도 ‘기쁨’과 ‘힘’을

 

스피노자는 사물과 생명체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양태(mode)라고 지칭하면서, 그러한 양태들의 만남이 생성해내는 갖가지 감응(affect)을 기쁨과 슬픔 두 가지로 대별했다. 기쁨이란 ‘힘의 증가’에 동반되는 감응이고, 슬픔이란 ‘힘의 감소’에 동반되는 감응을 말한다. H와 노들야학, 그들은 서로에게 그렇게 기쁨의 감응을 생성해내는 양태였을 것이다. 물론 H와 노들야학만의 관계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였지만, 그 우리들은 노들야학을 만나고, 또 노들야학에서 서로를 만나 함께 의지할 수 있어 기뻤고 힘이 더 세졌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함께 살아남았고, 또 질긴 투쟁도 함께 만들어 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이다. 그러나 혹여 고개를 갸우뚱하지 마시길. 노들야학에서는 “일상의 모든 현장이 교실이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가장 훌륭한 교과서”이며, “우리에게도 지키고 싶은 삶이 있고, 그것을 다 빼앗긴 존재들에게 필요한 건 적응이 아니라 저항”임을 배운다. 그리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라는 제안은, 효율성과 경쟁과 돈만이 최고의 가치로 추앙받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대로 함께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며, 어떠한 회유와 탄압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2003년 여름, 그러한 노들야학의 교사직을 휴직했던 나는 11년 만에 다시 복직을 한다. 가슴이 설레고 기쁘다. 그 설렘과 기쁨을 여러분들도 직접 함께 경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이 책을 꼭 사서 펼쳐보시기를.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한다는 가슴 벅찬 설렘과 기쁨의 감응을 이 책과의 만남을 통해 생성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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