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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검사나 변호사, 범죄 같은 이야기는
쉽게 우리에게 노출이 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국선 변호사는?
왜인지 모르게 그들은 능력이 없을 것 같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 내게 있었다. 돈 주고 변호사를 고용하는데
돈이 없으면 국선을 쓰니 이 사람들이
직업에 충실할 수 있을까?
그런 내게 다가온 이 책은
바보 같던 편견을 확 깨트려 주었다.
' 국선 변호사 '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이나 변호인이 있어야
충분히 방어를 할 수 있는 사건에서 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하지 못하거나 그러지 않을 때
법원에서 붙여주는 변호사를 국선 변호인이라고 한다.
2004년에 새로 생긴 직업으로 그 전만 해도
일반 변호사들이 돌아가며 국선 사건을 맡았고
그러다 보니 변론을 무성의하게 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고 한다.
가난하고 소외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피고인이 될 때 법으로부터 충분히 자신을
방어해야 할 권리를 내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자 국가에서는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주면서 이런 사건만
전담할 수 있도록 국선 전담 변호사를 따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단순히 피고인에게 돈을 받지 않고
변론을 해주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단 사실.
게다가 변론을 대충 할 거란 말도 안 되는
편견도 이 책을 읽고 싹 사라졌다.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만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상대로 서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 덕분에 당사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취했다. 이 '이중적 독립성'이 변론의 수준을 높인 핵심일 것이라고나는 생각한다.
국가에서 돈을 받지만 국가를 상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일하고 그 사람들에게서
직접적으로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구조.
다시 말하면 피고인이 유죄인 게 빤히 보이지만
돈을 받고 일하는 일반적인 변호사들은
의뢰인이 해달라는대로 무죄 주장이든
감형이든 주장을 해야 하지만
국선 변호인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처럼 국선이라고 하면 괜히
변론도 제대로 해주지 않을 것 같다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부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국선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풀어나가고 있어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사람답게
정말 말도 통하지 않는 상식 이하의 인간도
많이 접했을 저자. 하지만 그녀는 상대에게서
잘못을 찾기 보단 자신에게서 찾고
꾸준히 반성을 하고 있는듯 보였다.
그게 대단했다.
나 같았으면 아, 저 인간 진짜 말 안 통하네.
안 된다니까 왜 저래!! 하고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그녀는 아니었다.
이 일을 하면서 보고 들은 범죄 안팎의 풍경은 너무나 작고 사소하고 조각난 것들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썼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가 별로 전해지지 않아서였다. 기자라는 전 직업의 정체성을 다 잃진 않았는지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도 했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해준 덕분에
잘 알지 못했던 직업의 이면과 함께 아직도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소외받으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걸어나갈 그녀의 행보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