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내 유년의 빛
베이다오 지음, 김태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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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공항은 늘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 커다란 붉은 새의 둥지처럼 생긴 공항은 매번 새롭게 느껴졌다. 여러 번 베이징에 갔지만 천안문, 자금성 등 유명한 곳은 거의 가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생활 속 한 부분처럼 살아가려 여러날을 길에서 서성거렸다.

 

“여름날의 햇빛이 거리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그늘진 곳은 물처럼 시원하여 나는 사람들을 따라 이리저리 물고기처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을 바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쪽으로 가서 고독하고 오만하게 자신의 그림을 밟고 섰다. 머리가 온통 땀에 젖고 이어서 몸 전체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21p)

 

붉은 해가 진다는 것을 느끼는 건 택시들의 자연스러운 승차거부였다. 서울에서는 있을 수 없는 택시들의 퇴근 시간. 땅거미가 지는 베이징의 여름. 길에서 나는 매캐한 매연 냄새와 침을 삼킬 때마다 느껴지는 모레알 같은 느낌은 갈 때마다 모래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색깔로 다지지면 철회색에 황토가 약간 섞인 것이 베이징의 겨울의 바탕색이었다. 이 색깔이 모든 냄새를 이끄는 장수로서 사람들의 입과 혀를 메마르게 하고 목구멍을 연기로 가득 차게 했다”(26p)

 

베이징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보다 유독 메마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온몸으로 추위를 막아내고 있었으며, 길을 가다 누군가와 부딪히면 차디찬 몸이 깨져버릴 것 같은 추위였다. 모래바람 마저 불면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걸었던 기억이 난다.

 

 

<베이징 내 유년의 빛> 속의 베이징은 내가 다녀온 베이징과 닮았지만 많이 다르다. 자신이 알던 베이징은 사라지고, 또 다른 베이징이 되어버린 곳을 보며 그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낮고 짙게 깔린 '문화 대혁명' 속에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 사소한 단어의 나열에서 보여주는 친근감과 사촌 누나를 좋아해서 수영을 연습하던 작가의 어린 시절에서 풋풋함이 느껴졌다. 그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공통분모였을 것이다. 그의 회상은 작은 구슬에서 가구로 또 자신이 살던 ‘싼불라오 후통 1호’으로 중학교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그 굵고, 단단한 선에서 나는 작가가 중국 역사의 길 한가운데에서 살아옴을 느낄 수 있었다. 들불처럼 일어난 어른들의 세계를 보고 위험해하던 소년은 그 들불이 되어 ‘혁명’ 앞에 또 다른 ‘혁명’으로 서있던 것이다.

 

책은 베이징의 ‘빛과 그림자’라는 얇은 기억부터 시작하여 ‘아버지’라는 큰 기둥 같은 존재로 끝난다. 이 흐름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인생의 흐름 속 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부모의 일기 속에서 그 시대 작가를 키워 온 그들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은 작가의 유년을 지키고,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아버지'를 위해 쓴 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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