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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리셋 - 동경대 출신의 신세대 스님이 들려주는 번뇌 청소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혜연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번뇌 제거'를 향한 친절한 여행 길잡이
데이터에서 정보로 그리고 지식과 지혜로의 변화 과정을 정보의 진화단계라고 말한다. 데이터와 정보를 부지런히 모으지만 이를 구조화하고 체계화해서 숨은 진주를 발굴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빗대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타고난 통찰력과 심미안으로 아주 미약한 데이터와 정보만으로도 대단한 고수의 경지에 오를 정도의 지혜를 발휘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지식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데이터와 정보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번뇌는 없애고 싶다는 생각이나 번뇌를 가지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만으로는 없앨 수 없다.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번뇌를 없애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유아독존식의 아집으로는 턱도 없다. 왜 번뇌가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는지 등 선인들이 축적해놓은 데이터와 정보를 먼저 얻어야만 한다. 지식과 지혜로 발전시키는 과정은 결국 개인의 능력과 노력여하에 달려있지만 데이터와 정보는 상황이 다르다. 그야말로 번뇌의 지평에도 네이버 지식인이나 구글신 같은 게 있어서 누군가 잘 정리해둔 정보를 얻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번뇌에 대한 데이터와 정보를 모으는 것만 해도 고행의 시작이다.
마침 이런 고행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바로 '번뇌 리셋'이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용어와 개념을 재미나게 풀어낸다. 법정스님께서 본인의 삶 자체와 그의 사유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번뇌를 리셋하는 방법을 표현하셨다면 코이케스님은 애둘러 얘기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설명한다.
우리 내부에는 우리를 조정하는 잠재력인 카르마가 있다. 카르마란 '마음속에 쌓아놓은 에너지'를 말한다. 긍정적인 카르마를 많이 쌓아놓으면 심신이 불쾌한 상황에 놓여도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카르마를 쌓아놓으면 하찮은 사건에도 심하게 짜증이 난다. 이러한 마이너스 카르마를 만드는 것,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삼독(三毒)이라 일컫는 탐욕(貪慾), 진애(塵埃), 우치(愚癡)이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어떻게 느끼는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가는 이러한 과거에 무한히 쌓고 겹쳐온 작은 카르마가 거듭 쌓이며 만들어진 복합체에 의하여 거의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마음은 단순히 마음 자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물질, 즉 나쁜 호르몬을 생산하고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번뇌가 건강까지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해로운 번뇌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코이케스님이 소개하는 방법중 바로 실천가능한 두가지만 떠올려본다.
먼저 내 마음의 상태를 객관화하는 것이다. 가령 '화내서는 안돼'라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화, 화, 화, ...'라고 자신이 화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화가 나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이 화를 해소시켜 준다. 다른 하나는 삼초관이라는 방법이다. 마음이 동해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려고 하면 3초를 기다리는 거다. 따지고 보면 후회스러운 실수의 대부분인 순간적인 반응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정말 핵심을 찌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번뇌에 찌든 우리가 혹시라도 '번뇌 리셋'을 통해서 얻게될 마음의 고요를 되려 두려워할까봐 다음와 같이 조언한다.
깨달아 버리면 '기분 좋아' 같은 것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하는 오해를 합니다. 오히려 '기분 좋아'를 보통보다 훨씬 깊고, 섬세하게 있는 그대로 맛보게 됩니다. <중략> '기분 좋아'를 그때그때마다 모두 흡수하기 때문에, '카르마'라는 이름의 잔반이 나오지 않습니다.
네 컷짜리 만화, 형형색색의 화사한 종이, 코이케스님의 '별 뜻없이 네 컷짜리 만화만 즐기셔도 좋습니다'라는 말만 믿고 가볍게 펼쳐 들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은 스님이 내어 주신 숙제 하나를 짊어진 듯하다. 이젠 깨달음이 열린 상태를 만들기 위해 '번뇌 리셋'법을 실천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