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관음의 탄생 -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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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6


금욕과 출가를 지향하는 불교에서 섹슈얼리티는 장애이자 부정한 것이다. 태어나는 것도 고통이니 월경과 출산 또한 마찬가지다. 주기적으로 배출되는 월경피는 오염과 부정함의 징표일 뿐 아니라 존재의 무상함을 상기시키는 기표였다. 이러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와 기피로 이어진다.


여성의 몸, 특히 그 몸에서 나오는 피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12세기경 중국에서 만들어진 <혈분경>이 말해준다. 여자들은 월경과 출산 때 흘린 피로 세상을 오염시켰으므로 죽은 후 피 연못이 있는 지옥에 떨어져 매일 세 번씩 피를 마셔야 한다는 내용이다. 


불교는 여성의 몸 뿐 아니라 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덧없이 늙어가고, 죽으면 썩기 때문이다. 몸은 더러운 것이어서 몸의 부정관이 중요한 수행법으로 쓰일 정도다. 그런데 수행론이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특히 여성의 몸이 더러운 것, 수행에 방해가 되는 혐오스런 것으로 부각되었다.


남성 수행자들은 "여성의 몸은 더럽다"는 관찰 및 인식을 중요한 수행법 중 하나로 활용했다. 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자신들을 중생의 상태에 매이게 하고 가족의 계보에 묶는 위험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웬만해선 제어하기 힘든 치명적 유혹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석가모니가 성도하기 전 마왕의 아름다운 세 딸이 나타나 유혹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여성의 몸은 늘 수행자들이 걸려 넘어지는 최고의 장애물이자 육욕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인식이 불교의 여성혐오와 고질적인 성차별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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