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 - 익숙해서 상처인 줄 몰랐던 말들을 바꾸는 시간
데보라 태넌 지음, 김고명 옮김 / 예담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이 책의 특징은 언어학자이자 시인인 동시에 철학도 배운 저자가 실제 사례에서 수집한 상세하고도 적절한 예시를 들어서 언어학적으로 가족간의 대화방식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제시해주는 것을 들 수 있다. 언어학적이라고 해서 상당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려워지려는 순간에 절묘한 예시 담화를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동질감을 들게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아마 언어학이라는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가족간에 오가는 대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 가족끼리 어떻게 잘 대화로 풀어갈수 있을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최소한의 실마리는 얻어갈 수 있을거라 장담한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대화"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가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어떤 특징을 보이고 또한 어떻게 분석되며 어떤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아마 목차를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시작하는 글 _ 오늘도 가족과 다툰 당신에게 


1부 /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1. 다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 가족의 말은 겉뜻과 속뜻이 다르다

2. 넌 누구 편이야? : 가족의 연대와 소외

3. 싸우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 말다툼도 제대로 해야 한다

 

4. 미안하지만 사과는 못 해 : 사과에 대한 오해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우리 머릿속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된 편견이 많다는 점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이고 또한 구성원은 바뀔지라도 죽을 때까지도 함께하는 존재가 다름아닌 가족이다. 그렇기에 약간은 자만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른다. 속어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에 대해 근자감을 갖고있던 내게 이 책은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함께 살아온 기간이 오래되면 그들과의 의사소통에 익숙하기 때문에 모든 핵심을 잘 파악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의미가 잘못 전달되기 일쑤라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의미가 전달되는 과정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자면, 언어가 여러가지를 포괄한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대화, 담화는 실제로 행해진 언어라고 볼 수 있다. 이건 어떤 대화에도 포함되는 개념이겠지만, 말을 통해서 표면적으로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그 이면에서는 메타메시지가 전해진다. 이는 대화하는 주체가 되는 화자와 객체가 되는 청자가 누군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는 요소이고, 그리고 그런 화자와 청자가 수시로 뒤바뀌기에 대화를 분석한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어렵다. 그렇지만 예시와 함께라면 조금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학술서라기보다는 한 편의 가족 대화 분석 모음집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읽어나갈 수 있게 구성해놓은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또한, 살면서 불가피한 말다툼과 사과, 화해 방법에 대해서도 나와 상대방이 어떻게 다른지를 남녀관계를 중심으로 잘 풀어나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서는 대화의 프레임을 바꾸라고 제안한다. 상대방이 내가 제시한 말 중에서 메시지에 주목한 것인지 메타메시지에 주목한 것인지를 잘 포착하여 오해를 풀어나가라고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이 책을 읽어야 하겠지만 어쨋든 흥미로운 접근방식임엔 틀림없다. 그밖에도 가족관계는 통제와 결속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나아가는 관계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2부 / 가까워서 괜찮은 줄 알았던


5. 가족이기 전에 남녀라서 : 그 남자의 말, 그 여자의 말

6. 아이가 자라면 대화도 바뀐다 : 부모와 자녀가 관계의 폭풍을 지나는 법

7. 가까워서 더 힘든 엄마와 딸 : 애증의 모녀 관계를 바꿀 수 있을까 

8. 친하면서도 미워할 수밖에 없는 : 친구이자 경쟁자, 형제자매

9. 남이었던 가족이기 때문에 : 시가, 처가, 사돈의 대화


 

맺는 글 _ 가시 같은 대화에서 연고 같은 대화로


  2부에서는 가족 내에 존재하는 "관계"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서 부부, 부모와 자식, 엄마와 딸, 형제 자매, 그리고 가족과 가족이라는 내용으로 분석해나간다. 이 파트에서는 한 집에서 자녀이자 딸이자 언니로서의 역할만 수행하고 그 입장에 갇혀서만 바라보던 기존의 내 입장에서 벗어나서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엄마의 입장, 아빠의 입장, 그리고 동생의 입장 등을 그 위주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례를 읽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고,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이미 절반쯤은 문제가 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 사이에서 문제는 애초에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선 부부관계에서 나타나는 대화에 대해서는 앞의 장에서 이어서 다루었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잘 갔다. 단면적으로 몇 가지 살펴보자면, 남자는 꼭 사과를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여자는 반드시 사과라는 과정을 말을 통해서 받아야 본인이 사과받았다고 느낀다. 이런 차이점에서 서로만의 입장을 고집하게 되면 갈등은 심화되고 관계는 악화되기 때문에 한사람이라도 서로의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을 하는, 일종의 프레임을 바꿔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이외에도 부모와 자식에 대해서 살펴본 점도 인상깊었는데, 따로 엄마와 딸이라는 구성을 나누어서 새 장으로 배치한 점에서도 이 책의 저자가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에 있어서 여자와 여자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데, 엄마와 딸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딸이 어릴 적에는 일방적으로 보호자이자 통제자로서의 엄마였다면 딸이 크고나서는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축소해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점에 있어서 서로 조율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곤 한다는 점이 나로 하여금 공감대를 이끌어내게 했다. 

  또한 형제 자매 사이도 보다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첫째라서 다소 억울한 면이 많던 내 입장을 시원하게 대변해주었고, 결혼이라는 요소가 가족과 가족간의 결합이라는 데에 집중하여 가족 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장도 인상깊게 남았다.


  전반적으로 읽어가며 느낀 점은, 외국의 사례라서 이질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우리와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하며 살아간다는 점이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다르지는 않구나, 싶었다. 이렇게 읽힌 데에는 실증적으로 수많은 자료를 엄선하여 뽑아낸 저자의 안목도 한 몫 했겠지만, 번역한 사람의 노고도 상당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내용을 이질감없이 번역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설득력 있는 본문과, 매끄러운 번역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실 하루만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다. 사례도 워낙 다양하고 다루고 있는 내용 또한 방대하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쌓여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만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내용 자체에 공감이 많이 갔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학적으로, 특히 사회언어학적으로 바라본 가족이라는 대상은 일종의 부족이었다. 사람마다 쓰는 언어가 저마다 다르듯이(개인어라고 한다) 가족마다 쓰는 말이 다르다. 어휘라든지 습관이라든지 이런 면에서. 이런 것은 단기간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방인으로 다른 가족에 편입되거나 새로운 부족을 만든다는 점이 힘든 이유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작년에 본 연극 중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이라는 작품이 떠오르게 하는 책이었다) 가족이라는 부족 사회에서 원만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원만하게만 지낸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럴때 필요한 것이 이런 책 아닐까.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이 책에서는 프레임을 재설정한다고 표현했다) 해결의 실마리라도 잡고싶었던 마음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 정말로 해결의 실마리를 줬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이 가족중 누군가와 싸웠거나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그 누군가라면, 이 책을 읽으라고 냉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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