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가 나에게 물었다. 삶에서 괴로움이 덜해진다면,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나는 엄청난 독서가도 아니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끔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지만, 대답한 후에 공허해진 이유를 나는 스스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 출근을 하고, 상사와 동료와 뭔가를 전해야 하는 대상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윤택해지리라는 헛된 희망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시간외 근무를 하면서, 형제에게 대신 목돈 대출을 해 주고 나서 대출금을 떼일까 걱정하면서, 그런 일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내 삶에서 괴로움이 덜해지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생계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을 두세 시가 넘도록 꾸역꾸역 하면서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괴로움이 덜해진다면, 무엇을 더 읽고 더 쓸 수 있을까.
그렇게 읽는 시간이 확보되더라도, 그렇게 쓰는 글의 농도와 밀도는 훨씬 나아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일까.
스트레스와 괴로움과 슬픔이 글의 농도를 높인다는 것. 구양수가 말한 '시 궁이후 공'.
누구나 다 피곤하고 괴롭고 슬퍼서 틈틈이 졸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혼자서 운다.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언젠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생활에 찌들어서 살고, 그 찌든 얼룩이 배어나오는 글. 그게 진정한 글이라고 말하려면, 오늘을 또 견뎌야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알파'가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