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평등한가 - 쉽게 읽는 피케티 경제학 EBS CLASS ⓔ
이정우 지음 / EBS 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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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 최근 몰입해서 구독 중인 한 유명 건축가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이정우 작가, 그러니까 이정우 교수님 역시 명강의를 하신 분으로 보이네요.


경제학이라고 하면 보통은 접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구현되어 있던 이 세상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제아무리 발 버둥쳐도 내가 꾸던 꿈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던 날은 늘 있었기에. 그렇다고 해서 '왜 우리는 불평등한가' 스스로 자문한 적은 따로 없었지만. 어쩐지 오래전부터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은 또 아닌지, 자연스레 제목이 던지는 질문에 응하고 있었습니다.


경제나 정치 분야는 나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 배우는 기본 지식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딘지, 한없이, 밑이 깊고 또 먼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교양프로를 마구 쏟아내고 있는 EBS에서 경제학을, 게다가 피케티 경제학의 해제라니. 제목을 마주하자, 읽고 나면 내면의 궁금함이 어느 정도 가실 것만 같은 강한 기대감이 일었고 주저 없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샛노란 표지 디자인 역시 시선을 잡았는데, 서로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부등호의 수평선 위에 테이프로 덧붙인 듯한 디자인이네요. '서로 같지 않다'라는 의미를 '불평등'에 비유한 것 같아 왠지 적절했습니다.



책은, 부제 '쉽게 읽는 피케티 경제학'이라는 말 그대로 피게티의 『21세기 자본』과 『세계 불평등의 보고서 2018』,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총 피케티의 3부작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방향과 대안 제시에 이릅니다.


구성은 크게 10부로 나뉘어 있고 서문을 보면 '피게티의 불평등'을 주제로 2020년 8월부터 EBS 강연을 바탕으로 한 것이 책의 뼈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강의 내용은 아마도 피케티 책이 주력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첫 번째 단에서 피케티라는 경제학자에 대한 소개로 출발합니다. 그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300년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유명한 피케티 비율('r>g -β'라는 등식(자본 수익률(r), 국민소득 증가율(g), 부/소득 비율(β)등.), 즉 자본과 소득의 비율, 소득과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파헤쳤습니다. 피케티의 이런 놀라운 발견은 몇 개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나라 사이에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인류의 세월. 그러니까 1910년부터 2010년에 이르는 세기의 데이터를 토대로 일정 구간 비슷한 U자 형태의 곡선을 그려왔으며 이 U자 형태의 곡선은 자본이 국민소득의 몇 배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그래프입니다. 19세기 말 이 자본 대 소득의 비율이 6,7 정도였던 것이 20세기 들어 2,3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지난 40여 년간 오르고 전 세계적으로 U자 형태의 모습인 것입니다. 자본/소득 비율이 이렇게 올라간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만큼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bad sign이라고 책에서는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또 반복될 거라는 21세기의 우울한 전망인데 실로 아주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2~3 번째 장에서는 대공황과 뉴딜, 황금시대, 광란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와 당대의 대통령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피케티의 처방, 도금시대, 금권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자본주의 역사의 황금기를 표현하는 각국의 표현들이 인상 깊었는데 우리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겁니다.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 일본에서는 소득 배증,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던 시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반대로 광란의 시대를 일컫는 '재즈의 시대', '잃어버린 세대'가 있죠.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뉴딜의 작용과 부작용에 따른 교훈. 그리고 광란의 시대에 꽃피워진 소설과 예술에 대한 것은 가장 불평등의 gab이 컸던 시절 예술이 부흥했던 것인데 인간에게 삶의 고통이 때로는 땔감이 되기도 하는 슬픈 아이러니라니, 역설적이게도 슬픔 속에서 꽃피워낸 예술의 흔적은 인간 특유의 생존을 향한 저항의 한 형태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소득 불평등 그래프와 매우 맞닿아 있었던 '위대한 개츠비 곡선'은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던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소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당시 사회적 배경을 잘 담아낸 문학작품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니 이전에 보았던 소설과 영화 등이 버무려져 이해가 더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고리오 영감』 등 당대의 다양한 문학적 작품들의 언급은 각 시대를 환기해 주며 작가의 의도대로 이해를 도왔습니다. 사실 문학, 도서와 음악, 영화 예술 작품들은 어쩌면 가장 경제학적인 장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우리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에 경제 상황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 때문입니다.



4장에서는 토마 피케티에 대한 각국의 여러 평가와 함께 필자 역시도 평생 오해하며 살았던 '누진소득세'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경제가 가장 부흥하고 잘 돌아가며 성장률이 높았던 황금시대의 세금이 80퍼센트였다는 사실은 이해 못 할 부분이 아님에도 섣불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그것은 아마도 잘못된 정보의 습득으로 살아온 긴 세월과 한국의 정치적 배경이 크게 차지하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문제점 중 하나인 경제학 모델에도 이의를 제기합니다. 작가는 한국 경제학과 교수들에게 논문의 개수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모델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꽤 통감되는 부분입니다. 논문의 질보다 개수에 치중해 점수를 매기는 시스템은 비단 학계에만 있는 것은 또 아니어서, 누가 들어도 의구심이 생길만한 부분입니다.



5장에서 8장에 이르기 까지는 얼마나 세계가 불평등한지, 그 불평등함은 정당한지 도표와 사례를 들어 환기합니다. 이 파트에서 세계 소득 불평등 추이와 부익부 빈익빈의 실존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사례도 등장합니다.



6장 부터는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책이 무려 1,300쪽으로 책에도 소개되었듯 첫 책 『21세기 자본』이 주로 서구를 분석 대상으로 했다면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세계 전체를 분석 대상인 점이 달랐습니다. 역시 소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불평등 체제의 역사, 삼원사회의 불평등, 노예제도, 인도의 카스트 등을 통해 얼마나 불평등의 역사가 깊고 오래되었으며 큰 문제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7장에 이르면 드디어 소유자 사회, 경쟁 지상주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금권 사회와 비교하면 실력주의가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맹점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불평등의 이면에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아름다운 예술이 꽃 피는 아이러니가 있었는데, 프랑스의 '벨 에포크'가 여기 나옵니다. 아름다운 시대라. 듣기만 해도 황홀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즈음을 '도금시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톰 소여의 모험을 쓴 작가의 익살스러운 표현이라고 해서 재미있었네요. 단편적인 감상이지만 책은 각 단원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는데, 그것들을 표지판 삼아 읽는 것과 '강도 남작'이라든지 '도금시대' 등 이런 시대를 대변하는 표현들 또한 저는 이 책의 재미로 느껴졌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과 작품 천재들의 만남 등에서 오는 동감 요소는 경제를 이해하는 데 사회적 배경을 보태어 이해하기 쉽게 불을 지펴주는 좋은 재료라고 생각되었고, 피케티나 경제학, 연일 보도되는 부동산 투기와 부조리. 또 이것이 왜 부조리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 그리고 무의미한 논문들을 계속해서 내라고 하는 학교의 시스템, 정치, 잘못된 기사들, 오보, 그것의 방치, 세금, 너무 많은 것에 관여하고 있는 뿌리 깊은 불평등등 다채롭게 각개 분야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8장부터 10장까지 이 책의 가장 큰 키워드와 대안이 나옵니다. 피케티는 불평등과 민족. 불평등 문제는 재산이라는 단어로, 민족 문제는 국경이라는 단어로. 피케티는 3가지 해법을 제시합니다. 사회국가, 누진소득세 강화, 그리고 세계 자본세. 세계 자본 세는 저로서도 참신하게 느껴졌지만 9장에서 다시 말하듯 자연스럽게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


장마다 모두 중요한 경제를 이야기하기에 그 내용이 방대하고, 한 개의 단원만으로도 긴 이야기가 가능할 정도로,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요소를 집약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케티가 정리한 자료 자체로도 긴 세월의 통계임과 동시에 세계 각국의 축약이고 추이인 만큼 전제되고 포함해 생각해야 할 사회적 배경과 역사, 문화, 정치적인 것 등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라 여겨졌습니다.​



특히 일각의 다른 통계들과 달리,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에는 '부동산'이 포함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부동산 관련해서는 슬프게도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울한 현실로 다가오더군요. 아무리 평생을 벌어도 내 집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시대적 슬픔. 태어나 4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20여 년 전에는 내 집, 내 땅의 자산적 소박한 꿈이 있긴 했었습니다. 자수성가에 대한 환상 역시 있었을 테고요. 막상 현실을 살며 세상에 부딪히며 자연스레 스러져버린 꿈들이기에. 아마 소작농을 닮은 월세의 삶을 강요받는 지금의 청년, 중장년층에게는 마냥 낯선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생각됩니다.



문제적 세기를 떠나 세습 자본주의의 악영향만큼 그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 또한 미약하게나마 계속 시도 되어 왔다는 것 또한 통계를 통해 알 수 있었는데 그 시도 자체도 실패한 루틴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나 실력주의와 불평등. 부와 계급의 독점, 형태만 바뀐 채 반복 상속되고 있는 세습적인 자본주의 관습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을 재인식 할 수 있었습니다. 개개인이 깨어나고 인식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 또한. 점진적이나마 제도와 체제가 바뀌어 간다면, 정치와 시스템이 절대 이상과 꼭 같을 수 없다 하더라도 피케티가 보았던 지난 어느 황금시대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꿈을 꾸어봅니다.



​책을 통해 피케티의 경제학적 관점과 통계 자료의 분석, 불행에 기여하는 경제적 사실, 그리고 불평등. 무지로 살아온 시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까지. 아나키스트, 야경국가, 잊고 있던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로리' 까지. 굳어 있던 어느 감각을 다시 누른 것처럼, 애매하게 알던 것을 자각하고 정립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소득의 재분배, 분할의 방식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 만큼은 과거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현실을 똑바로 마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아닌지, 또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로에 서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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