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지음 / 까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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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얘기이다.
좀 더 넓게는 다양한 시선으로의 역사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동쪽으로 갈 수 없어서이다.
16세기 동쪽을 차지한 오스만투르크 때문에
중국과 인도와의 무역을 할 수 없어 새로운 商路를 개척해야 했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결과는 단적으로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1518년 2,510만명에 달하던 멕시코 인구가 1622년에는 75만명으로,
아메리카 전체로 확대해서 추정하면
1520년 7,500만명이던 인구가 1620년에는 500만명으로,
정복전쟁 전 1,000만명이던 잉카제국 인구는 1630년 경 60만명으로 감소한다.
스페인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정복자들에 의해
몰살당하고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 피폐해진 육체는
대서양을 건너온 천연두, 홍역과 같은 전염병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문명과 야만, 주체와 타자 등과 같이 이분법화된 구도에서
문명과 주체는 야만과 타자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고 교화시켜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맘대로 약탈하고 부릴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라틴아메리카를 연구하는 이성형 교수는
미각자본주의의 대표주자인 설탕과 커피를 예로 들어
그 속에 숨겨진 라틴-아프로-아메리카의 모습을 보여준다.
B.C 8000년 경 남태평양 뉴기니에서 시작된 사탕수수 재배는
B.C 6000년 경 필리핀과 인도로 들어온다.
이미 기원전 400년경 인도에서 설탕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며
중국은 7세기에 당태종에 의해 인도로부터 제당법을 배워온다.
이렇게 전파된 설탕은 아랍인을 통해 8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되고
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로 사탕수수 모종이 전해지게 된다.
설탕의 감미로운 맛에 길들여진 유럽인은
사탕수수가 잘 자라는 아메리카에서 다량의 설탕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흑인 노예를 도입한다.
유럽인의 풍족한 식탁을 채우기 위해 국가들도 노예제를 공인한다.
토픽이라는 사람은 설탕은 "아시아의 작물, 유럽의 자본, 아프리카의 노동력,
아메리카의 대지가 결합된 진정한 국제적 작물"이라고 얘기했단다.
커피도 마찬가지... 

이러한 예를 들어 써 내려간 50개의 짧은 글에서 아픔을 읽는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물 일 뿐이라지만
감추어진 이야기가 너무 많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발발 후 몇년이 지난 1806(?)년에 일어난
흑인을 중심으로 해서 성공한 아아티 혁명은
프랑스 혁명보다 더 큰 의미를 가졌지만-국가독립, 자치권 획득, 시민 혁명-
누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던가.

아라파트가 이틀 전 11월 11일 사망했다.
부정을 축재한 권력자의 부패한 면모를 가졌지만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그의 인생사를 보면서
우리가 배운 정의로운 이스라엘, 테러로 이미지화된
호전적이고 침입자인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교공부를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더불어 나눔을 실천할 것인가
기억되기 위하여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승자가 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정의를 배우지 못하고 세상은 승자만을 보여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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