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남자의 참을 수 없는 유혹
스티븐 아터번.프레드 스토커 지음, 윤종석 옮김 / 좋은씨앗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대는 너무도 음란하다. 음란한 짓을 하면서 그것이 음란한 것인지를 모르는 것이 더욱 가슴아프다. 예수님을 구주로 섬기고, 거룩하게 살아야할 사람들도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서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세상과 타협을 하고 있다. 성에 관한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거듭 거듭 죄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면서 성경 말씀을 덮어두고 자신의 감정과 세상의 말만을 듣고 살 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성에 관한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혼합주의를 경계하라고 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의 기준을 섞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지 않고, 여기에는 분명히 다른 뜻이 있을꺼야...어떻게 이쁜 여자를 보고 그런 생각을 안할 수 있어...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이렇게 말하면서 그 말씀에 숨어 있는 뜻이 있을 꺼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성에 대한 이론을 세우고 그 이론을 복음이나 되는 양 전파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한다.
이 책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철저히 우리의 죄를 지적한다. 우리가 무심코라도 짓는 죄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성경의 말씀을 엄청나게 인용한다. 절대로 빠져나갈 틈이나 합리화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성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 했고, 약한 존재 인가를 분명히 알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죄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는지 말해준다. 가장 강력하게 말하는 것은 보지 말라는 것이다. 남자는 시각에 가장 민간하게 반응하는 동물이기에 보는 것에서 성적인 범죄가 시작 된다는 것이다. 조깅하는 여자도, 잡지에 속옷만 입고 등장하는 여자도, 전단지, 길거리에 간판등등 유혹이 될 만한 모든것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이렇게 6주정도를 살면 기계적으로 이런 장면을 보면 고개를 돌리게 된다고 한다. 보지 않는 작업을 통해서 우린 마음도 지킬 수 있고, 생각도 지킬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눈을 굶기면(이 책에서 저자가 쓰고 있는 표현이다...) 자기 아내만을 더욱 친밀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여자에게 쏟을 관심까지도 모두 아내에게 쏟을 수 있다고 한다. 아직 결혼을 안해서 잘은 모르지만 동감한다. 남자들은 돌아다니면서 많은 여자를 보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것에 자꾸 익숙해 지면 아내와 다른 여자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교하게 되고, 의식하게 된다. 이것이 가정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성적인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내 주의에 있는 나를 유혹 할 만한 작은 불씨 하나라도 철저하게 없애야 한다. 언제 어디서 우릴 덮칠지 모른다. 어떤 여자가 나를 유혹 할 지 모른다. 전쟁터에 군인이 언제나 옷을 입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자듯이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남자의 성적인 음란함이 그 만큼 심하기 때문이다. 사단이 이점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남자를 넘어뜨리려 할때는 언제나 이 방법을 쓴다. 남자들이여 긴장하자!!

남자의 입장에서 교재를 하면서 여자를 너무 귀하게 보지 않기에 우리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너무도 당연히 쉽게 넘는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보기를 쾌락의 대상이나, 도구 정도로만 보기 때문에 그렇다. 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눈을 글썽 거렸다. 저자는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귀한지를 간증하듯이 적었다. 아내를 낳아준 아버지는 그녀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고, 아껴주고 그랬을까...이런 것을 깨달았을 때 저자는 아내를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감정이 들지 않을때도 사랑한다는 처음 느낌을 그대로 갖고 대하면 다시 사랑하는 감정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감정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한다. 우리아는 밧세바를 자기의 새끼 암양 처럼 사랑했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를 쾌락의 도구로 사랑했다. 그 차이는 엄청나다. 다윗은 살인자가 되었고, 우리아는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아내를, 교재 중이라면 애인을 이렇게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우리아가 밧세바를 사랑했던 것처럼 남자들이여 여자를 귀하게 다루고 여기자...그러면 진장한 성의 기쁨 또한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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