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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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희와 나』
이기호 | 구병모 | 권여선 | 기준영 | 김경욱 | 김애란 | 박민정 | 최은영 | 편혜영


"더 적나라하게 쓰는 작가가 되겠다"

책 소개글을 보고 한정희는 누구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자인 이기호 작가의 수상소감을 보자마자 이 책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총 10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기호 - 한정희와 나(수상작),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자선작)
구병모 -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권여선 - 손톱
기준영 - 마켓
김경욱 - 고양이를 위한 만찬
김애란 - 가리는 손
최은영 - 601, 602
편혜영 - 개의 밤

이 책은 수상자 이기호를 비롯해 수상 후보작에 오른 8인의 작품들이 수록된 작품집인데, 수상작뿐만 아니라 후보작들 모두 읽는 내내 뛰어난 표현력과 작품성이 느껴졌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몇몇 작품들이 더 눈에 들어왔는데 아마도 내가 겪었던 상황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간 사회적 문제라고 들어왔던 것들이 반영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한정희와 나"는 요즘 들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 가족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가해자 집단이 피해자를 끊임없이 괴롭혀 피해자에게 크나큰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히는 것을 그저 놀이였다고 말하는 것이 비단 책에 나온 이 아이들만의 이야기일까. 이런 아이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보며 한정희의 고모부이자 저자인 나는 참다 참다 폭발을 하고 만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

미디어를 통해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학교폭력과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자였던 사람이 가해자로 바뀌어 자신이 받았던 모욕감과 고통을 고스란히 다른 이에게 전해주며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해내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했고, 실제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기도 했다. 또한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처벌받은 것이 부당했다며 마치 누구 한 놈 걸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말 사소한 일 하나에 날을 세우며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며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죄책감이나 뉘우침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그 상황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했는데, 책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해 쌍방 과실로 만들어버리며 아이들을 바로 가르쳐야 할 부모가 오히려 자기 자식을 감싸고 잘못된 길로 가도록 부추기고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크면서 자란다는 것은 이제 옛날이야기나 다름없어졌다. 친구 간의 투닥거림은 이제 주먹다짐을 떠나 사이버 폭력으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손에 피를 묻히며 타인을 괴롭히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영악하고 잔인하게 서로를 괴롭혔고 무감각하거나 때론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말 한 마디에 타인이 얼마나 아파하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듯했다. 이런 시대적, 사회적 문제를 "가리는 손"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상략) 애가 어릴 땐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아직까진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모바일 게임을 하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즐겨 보는 정도 같지만, 가끔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본 터라 걱정됐다. 지금은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굳이 '옥상으로 올라와'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니까. 아이가 지금 나와 식사를 하는 중에도 실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맞으며 피 흘릴지 몰랐다. 재이는 틀림없이 이런 나를 고루하다 할 테지만."

"가리는 손"의 주인공 재이는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로부터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학교폭력과 차별이라는 틀을 넘어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었다. 재이와 재이 엄마인 나를 통해 다문화가정, 편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말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벌어진 십 대들의 사건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노인에게 틀딱이라는 말을 하고 폭행을 한 십 대와 그런 모습을 보고 함께 낄낄 웃어대던 다른 십 대들의 모습을 보며 "공경"이라든가 "인간의 존엄성"은 이미 사라진 듯 보였다. 아무리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간극이 존재하고 갈등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비하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것이 겉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이슈가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를 인식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리는 손"에서 다루고 있는 또 다른 문제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재이가 엄마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과 그 답에 대한 재이의 반응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대화였고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아빠랑 왜 헤어졌나고?"
"응"
"음…… 생각이 달라서?"
"그럼 토론을 했어야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생각이 다르다는 엄마의 대답은 엄마와 아빠의 생각이 달라서라는 뜻도 있겠지만, 그들(재이의 부모)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동남아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기대 이상의 관심과 비난을 들어야 했을 테니까. 그 정도의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뭘 더 이상 바라겠냐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어떤 삶을 살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덕성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사람들의 잣대에 의해 나의 삶은 원치 않는 평가를 당해야 했다. 그것은 여자가 이혼하고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에겐 껌처럼 질겅질겅 씹다가 버리면 그만인 심심풀이 땅콩이고 타인의 삶이었던 것이었다.


타인의 삶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대한 관심은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도 나타난다. 타 지역에서 이사 온 젊은 부부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임신 막달이 된 주인공 정주를 숨 막히게 했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귀를 가진 동네 어르신들의 쉬지 않는 방문은 정주에게 결코 달갑지만은  않았다. 정주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꼬투리 삼아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요즘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어르신들과 그런 어르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주. 세대 간의 갈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임신을 하면서 일을 그만둔 한 여성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관심과 자신의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부분을 읽으며 크게 공감이 갔고, 저출산 문제에 대한 노인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젊은 세대에게서는 공감을 사지 못해 갈등의 요소가 되는 것 또한 이해가 됐다. 출산과 관련된 갈등으로 고통받는 삶을 사는 이야기는 "601, 602"에서도 나오는데, 남아선호사상으로 기인한 가족 내 남녀 차별과 폭력, 그리고 아들을 낳지 못해서 집안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했던 우리 엄마 세대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나의 아빠는 맏아들이었고, 결혼한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아들을 낳지 못한 엄마는 친인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은근한 지탄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 잘난 맏며느리, 밖에서 일한다고 살림도 소홀히 하고 아들도 낳지 못하는. 그것이 엄마 이름 김미자 앞에 붙은 무겁고도 끈적이는 수식이었다. 엄마의 일부는 그 수식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엄마의 일부는 그 수식을 수의처럼 입고 있었다. 아들을 낳지 않는 한 벗어버릴 수 없는 무거운 옷. 딸 아들 운운하며 효진이를 깎아내리던 효진이 엄마의 말은 사실상 아들 없는 엄마의 처지를, 아무리 잘 키워봤댔자 그저 '가스나'일 뿐인 나를 향한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것이 임신을 위한 퇴사였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친척들에게 들어 알았다. 애미가 되어서 돈 번다고 애를 방치한다는 말을 듣던 엄마는 막상 직장을 관두고서는 남편 잘 만나 집에서 속 편하게 노는 여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의 정주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601, 602"의 저자의 엄마는 친인척들로부터 끊임없는 가족계획에 대한 관심과 간섭을 받아야 했고, 직장을 다니면 다니는 대로 안 다니면 안 다니는 대로 이야깃거리의 소재가 되어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자"에게 갖는 인식이 변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씁쓸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손톱"이었다. 청년실업과 저임금, 저출산이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면서 젊은이들은 이미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를 넘어 사포세대(인간관계 추가), 오포세대(내집마련 추가)라 불리고 있다. "손톱"은 흙수저로 태어난 소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가 다른 언니와 함께 살던 나는 엄마에게도 버림을 받고 믿었던 언니에게까지 버림을 받게 된다. 소희에게 남은 것은 스물한 살의 소희가 감당하기엔 벅찬 빚뿐. 이런 소희는 매일같이 돈을 계산한다. 한 달 월급에서 얼마를 모으고 얼마를 써야 빚을 갚을 수 있는지, 언제쯤이면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녀는 계산하고 또 계산한다. 울분이 쌓여 터져버린 손톱은 그녀의 아픔이고 고통이었지만 그녀 자체이기도 했다. 병원비 7만 원이 아까워 치료를 더 이상 받길 거부하는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쳤고 그녀의 삶 역시 곪을 대로 곪아버렸다. 쇼윈도에 펼쳐진 고급 외제 승용차들을 보며 그녀가 피와 고름을 창에 묻히고 도망간 장면은 마치 너희 흙수저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너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소희는 어느새 빌딩 쇼윈도 앞에 바짝 붙어 서 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이 닦인 유리 너머로 외제 자동차들이 손에 잡힐 듯 반짝거린다.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뭘, 뭘? 뭘? 뭘? 뭘?
소희는 다친 개처럼 유리에 대고 짖었다. 뭘, 뭘, 뭘, 외칠 때마다 유리에 김이 서렸다. 매장 안에서 남자 직원이 소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진수 씨를 닮았다. 온몸이 엄지손톱의 혹처럼 얼었다 녹으면서 뜨겁고 흐물흐물한 살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갯벌에 쑤욱 빠진 것도 같았다. 이대로 유리에 철썩 들러붙어버릴까. 직원이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걸 보면서 소희는 엄지손톱에서 거즈를 떼어냈다. 손톱 없어도 된다. 엄마 없이도 살았고 언니 없이도 사는데 그깟 손톱 없어도 된다. 됐다 뭘, 됐다고, 안 와도 된다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오지 말라고. 소희는 혹에 끈끈하게 고인 약과 피와 진물을 유리에 꾹 눌러 비비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소희 마음속에도 흉한 혹이 돋아났다. 다신 안 와. 다신 안 온다고. 언니…… 안 온다고. 언니 그년…… 안 와도 된다고. 영영 오지 말라고."


헤어 나올 수 없는 빚에서 허덕이는 어린 나이의 소희. 그녀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 달리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뒤로 가는 것만 같아 보였다. 이런 그녀가 모든 만물에 공평하게 뇌리 쬐는 햇빛을 보았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만다. 빛의 따스함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고 모든 것들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반짝일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얼마나 슬펐을까.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시기에 그녀는 가난이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빛도 누릴 수 없었고, 가족에게서 느낄 수 있는 따듯함도 제대로 받아보질 못했다. 햇빛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값졌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했고 그녀의 삶은 이 모든 것들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슬플 수밖에 없었으리라. 책을 읽는 내내 힘들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무미건조하고 덤덤해 보이는 그녀의 태도가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상략)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날 소희는 찌르는 듯 따스한 빛, 강물이며 건물이며 만물이 스스로 빛나게 하는 빛, 무차별하면서 공평하고 무심하면서 전능한 빛을 보았다. 눈이 부셔 눈물이 고였지. 열차가 다시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야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손톱 절반 가까이를 부러뜨리고서야 맛볼 수 있었던 한낮의 햇빛은 그토록 짧고 강렬했다. 소희는 강변을 달리는 통근버스 차창에 바짝 붙어 않아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본다. 버스가 좋은데, 소희는 버스가 슬프다. 그러니까 슬픈 건 버스가 아니라 햇빛인데,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왜 하필 엄지손가락이었을까. 많은 손 중에서도 엄지손가락이 아프다는 것이 많은 의미를 가져온다고 느꼈다. 일단 엄지가 없으면 물건을 쥘 수 없으므로 가장 중요한 손가락으로 생각되어진다. 게다가 잘했다고 표시를 할 때 우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손가락을 이용해 수를 셀 때도 엄지는 항상 1번에 해당된다. 아이들에게 손가락을 알려줄 때는 아빠 손가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결국 엄지손가락이 아프다는 것은 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발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활력이 넘쳐야 할 젊은이들이 가장 고통받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 피를 돌게 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부분을 말하는 듯했다. 그녀의 아픈 손은 청년 실업과 저소득층의 고통이자 눈물처럼 느껴졌다.

 

 

 

 

서로 다른 작가가 쓴 글들이지만 정말 놀라우리만치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우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보듬어야 할 것들을 지나쳐버리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과연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반추해볼 수 있었다.

책에서 다루었던 다양한 소재들 중에서도 "갈등"이라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생긴 사회적 병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너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갈등은 내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밖으로 분출되기도 하며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조롱까지 더해져 "존중"은 사라져버렸다. 학교폭력, 인종 차별, 성차별, 세대 갈등 등 인간관계가 변질되면서 사람들은 폭언과 폭력을 일삼게 됐다. 우리 사회는 많이 아프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그것들을 알리고 고치기 위해 이런 글이 쓰였다고 생각하니 우리 사회가 조금씩 건강하게 변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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